이 글은 『부커진 R3호 : 맑스를 읽자』의 '예술과 정치' 부분에 수록된 다니가와 간의 글을 소개하면서 역자 신지영 선생님이 작성한 글입니다. 다니가와 간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사상가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블로그를 통해 공개합니다.

다니가와 간(谷川雁): 이족(異族)들의 마을, 그 원점(原点)의 에너지

- 신지영(수유+너머)

아마도 이것이 한국에 다니가와 간(谷川雁)의 원문을 처음으로 번역하여 소개하는 셈이 될 것 같다. 다니가와는 1950~60년대에 활동한 시인이자 <서클 마을>을 만든 활동가이자 사상가였다. 따라서 다니가와의 사상과 활동의 정수는 1958년부터 규슈의 후쿠오카 현(褔岡県) 나카마에 시(中間市) 탄광촌에서 만들었던 이족(異族)들의 코뮨, <서클 마을(サークル村)>을 둘러싼 활동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일본 공산당이 추구했던 소수의 전위가 주도하는 혁명을 비판하고, 모순되고 어둡고 부정적으로 표상되는 대중의 에너지와 긍정적인 전위의 에너지의 부딪침을 통해 이족들의 네크워크 마을을 만들려고 했다. 이런 그의 입장은 결국 일본공산당과 어긋났고, 1960년대 안보투쟁이 한창이던 때 공산당으로부터 이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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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사상가(詩人思想家) 다니가와 간

그런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주권권력과는 다른 형태의 코뮨을 만들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번역되는 글이 「동양의 마을 입구에서」와 「환영의 혁명정부에 대해서」라는 점은 의미깊다. 「동양의 마을 입구에서」는 『서클 마을』이란 잡지 및 활동이 시작되었던 때의 전후 정황과 마을을 구성하는 동력을 보여주며, 「환영의 혁명정부에 대해서」 는 <서클 마을>의 사상적 핵심이 들어있는 선언문 형식의 글이기 때문이다.

  「동양의 마을 입구에서」가 발표된 1955년에 그는 폐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미나마타 시(水俣市)나 아소(阿蘇)의 병원을 전전하다가 실업대책과 요양을 겸해서 방물가게를 연다. 이 글에서 그는 <서클마을>의 "입구"에 다소 머뭇거리며 서 있다. 8년 만에 규슈로 돌아와 <서클 마을>의 제 '1막'을 시작하기 바로 직전이다(「서클 마을 시말기」(サークル村始末記)). 그가 이 입구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은 "골칫덩어리 같으니라고"라고 하면서도 빙글빙글 웃으며 끝없는 신뢰를 보여 주는 벗에게서 나온다. 또한 "노동자 투쟁의 소용돌이로부터 한 발을 빼고" 8년간 요양하면서 다니가와 간 내부에 생긴 변화에서 나온다. 그는 이 기간 동안 모든 판단의 근거가 무너져 내려,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에너지의 심연을 보게 된다. <서클 마을>을 통해 그는 노동자와 농민, 전위와 대중, 마이너스와 플러스의 에너지 등, 길항하고 있지만 실상은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거대한 에너지의 소용돌이에 물고를 트려고 한다.

1958년 9월, 다니가와는 우에노 에이신(上野英信), 모리사키 카즈에(森崎和江) 등과 함께 잡지 『서클 마을』을 창간하고 규슈에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환영의 혁명정부에 대해서」는 1958년 6월, 즉 『서클 마을』창간 직전에 발표된다. 이 글에서 그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는다. 마을을 구성하는 에너지, 그 감각의 심연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어떤 의미에서 이 활동은 벗들의 신뢰 속에서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의미에서 영원히 '아직' 시작되지 않은 활동이었다. 왜냐하면 <서클마을>은 고정된 실체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상반되는 두 극의 긴장관계, "전위와 원점 사이에 존재하는 최대로 긴장된 에너지" 속에서 끝없이 시작되는 코뮨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아직"인 <서클마을>은 오직 "환영"으로만 그려질 수 있다. 새로운 혁명정부, 코뮨은 기존의 감각으로 포착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당적'이 과거와 현재를 말해주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늘 반쪼가리 증명서"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는 "세계의 영상을 뒤집지 않는 한, 현실을 뒤집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먼저 이미지를 변화시켜라!"라고 말한다. "감성의 코뮨 권력"을 현실보다 한발 앞세워 세워야 한다. 또한 영원히 "아직"인 <서클마을>의 동력은 모순되는 두 가지 방향성을 지닌다. 하나는 "탄광, 특수부락, 화산재 지역의 빈농, 한센병, 외딴 섬… 이 원색의 별들" 혹은 이족(異族)들이 서로 부딪치며 만들어 내는 심연의 에너지이며, 다른 하나는 그 속에서 반짝 반짝 드러나는 전염력 강한 "작은 규모의 연대감정" 혹은 "연대의 쾌감"이다.

이처럼 1955년 "동양의 마을 입구"에 서 있던 다니가와 간은, 1958년을 정점으로 "환영의 혁명정부"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계속해서 선언한다. 한편으로는 "그것은 포로를 죽일 수밖에 없는 공동체였다"라고 코뮨이나 마을에 다시금 반복해서 생기는 어둠과 잔혹성에 경고를 던지면서도, 이렇게 계속해서 중얼거린다. "고립과 도착을 바꾸어 연대에 다가가기 위해, 기우뚱거리고 피를 흘리면서 사라져 가는 사람들의 행렬" 이라고. 다니가와 간의 이 두 글이 어떤 곳에서건 마을을 끝없이 다시 시작하게 하는 동력이 되길 바란다.

2010/07/09 11:34 2010/07/0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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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et it be 2011/10/13 22:35

    글 잘 읽었습니다. 번역서가 언제쯤 나올까요? 다니가와 간의 책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

    • 그린비 2011/10/14 11:45

      let it be님 안녕하세요.
      다니가와 간의 책은 아직 출간일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