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나멘 총서는 도서출판 그린비가 기획한 인문사회 총서이다. 클리나멘(clinamen)은 ‘기울임/기울기를 뜻하는 그리스어의 라틴어 식 표현으로서 ‘사선운동’을 뜻한다. 고대 그리스의 원자론에서는 원자들의 이합집산이 세상만물을 생성‧소멸시킨다고 봤는데, 원자론의 효시인 데모크리토스처럼 원자들이 수직낙하하는 직선운동만을 한다고 가정하면 원자들의 이합집산을 가져올 원자들간의 충돌(마주침)을 설명할 수 없다. 데모크리토스의 제자인 에피쿠로스는 클리나멘(사선운동) 개념을 도입해 이 난점을 해결했고, 그 이래로 이 개념은 철학사에서 필연과 운명을 거부하는 ‘자유’를 뜻하게 됐다. 왜냐하면 이 세계가 원자들의 클리나멘과 그로 인한 우발적 마주침의 결과물이라면, 세계가 어떤 의미나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다는 기존의 목적론적 세계관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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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의 독창적 맑스주의!
-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맑스주의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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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맑스주의』
- 클리나멘 총서 003

이진경 지음 | 도서출판 그린비 | 인문, 사회
발행일 : 2006년 3월 30일 | ISBN : 978-89-7682-960-3
신국판변형 (150×220mm) | 488 쪽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맑스주의라는 이념의 대지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불모의 땅처럼 보였다. 누구도 그 땅에 다시 씨를 뿌릴 것 같지 않았고, 씨를 뿌린들 땅 속에서 그대로 썩어버리고 말 것 같았다. 그러나 ‘모두’에게 그 땅이 떠나야 할 폐허였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도 세계적으로 적지 않은 학자들이 ‘맑스주의’의 자양분 아래 새로운 사유를 시도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의 공세가 전 지구적 양상으로 펼쳐지는 만큼 그것을 넘어서려는 시도들이 ‘맑스주의’의 이름 아래 계속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책 『미-래(未來:아직 오지 않은!)의 맑스주의』 또한 그 폐허에 남아 불모의 땅을 다시 생성과 창조의 땅으로 만들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한 지식인의 지적 결과물이다.


∎ 지은이 소개

이진경 |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서구의 근대적 주거공간에 관한 공간사회학적 연구:근대적 주체의 생산과 관련하여」라는 논문으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공부하는 이들의 ‘코뮨’인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자본주의의 외부를 사유하고 실험하고 실행하고 있으며, 박태호라는 이름으로 서울산업대 교양학부에서 강의하고 있다.
    전태일의 유령, 광주시민의 유령들과 더불어 공부하고 전투하며 80년대를 보내던 중 이진경이란 필명으로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1987)을 썼고, 그 책이 허명을 얻은 덕분에 본명은 잃어버렸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시작해 그 첫 결과물로 『철학과 굴뚝청소부』(1994)를 발표한 뒤, 자본주의와 근대성에 대한 이중의 혁명을 꿈꾸며 『맑스주의와 근대성』(1997),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1997), 『수학의 몽상』(2000), 『필로시네마, 혹은 영화의 친구들』(2002) 등을 썼다.
    혁명을 꿈꾸면서 만나게 된 맑스와 푸코, 들뢰즈·가타리 등을 친구로 사귀게 되었고, 이들의 우정어린 가르침 속에서 사유하며 『철학의 외부』(2002)와 『노마디즘』(2002), 『자본을 넘어선 자본』(2004), 『미-래의 맑스주의』(2006) 등을 썼다.
    또 대학에서의 강의 경험을 통해, 현대철학이나 사회이론이 그 사유의 심도가 깊어지고 분석의 의외성이 확장되면서 이론적으로 훈련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론 자체의 소외까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한 뒤 『모더니티의 지층들:현대사회론 강의』(2007)와 『문화정치학의 영토들:현대문화론 강의』(2007)를 기획하고 집필에 참여했다.



∎ 목차

서문

1부 도래할 맑스주의?
1장 외부에 의한 사유, 혹은 맑스의 유물론
유물론이란 무엇인가?│관념론, 혹은 내부화하는 사유│외부성의 유물론│유물론과 혁명
2장 노동의 인간학과 미-래의 맑스주의
인간과 노동│노동의 인간학:인식론적 배치│노동의 인간학:욕망의 배치│노동의 인간학과 맑스주의

2부 가치의 생산과 화폐의 권력
3장 노동가치론과 맑스주의 : 노동가치론의 몇 가지 전제에 관하여
내재하는 외부│내재적 비판의 방법│노동가치론의 공리│노동의 공리│착취와 휴머니즘
4장 가치형태론에서 화폐와 허무주의
재현으로서 화폐 개념│가치와 표현│가치와 재현│화폐와 허무주의│화폐와 욕망
5장 노동의 기계적 포섭과 기계적 잉여가치 개념에 관하여
산업혁명과 노동│기계화의 세 가지 계기│자동화와 정보화│기계적 포섭의 결과들│기계와 잉여가치

3부 계급과 정치
6장 부르주아지는 자본주의적 계급인가?
자본주의로의 두 가지 길?│도시와 자본주의│자본주의와 영토국가│자본주의와 절대주의│누가 부르주아지가 되었나?│ 국가와 부르주아지
7장 계급과 비-계급의 계급투쟁 : 코뮨주의 정치학을 위하여
신분에서 계급으로│자본주의 공리계와 계급│부르주아지 : 보편적 계급│프롤레타리아트 : 비-계급│계급과 비-계급의 계급투쟁
8장 맑스주의에서 차이와 적대의 문제
맑스주의와 차이의 철학│대립 이전의 차이│구성적 차이│모순, 혹은 현실적 대립│프롤레타리아트와 적대의 정치학 │ 차이의 정치학을 위하여

4부 코뮨주의를 위하여
9장 맑스주의와 코뮨주의:코뮨주의자는 어떻게 사유하는가?
혁명의 꿈 혹은 “무엇을 할 것인가?”│사회주의의 ‘폐허’에서 사유하기│“코뮨주의란 무엇인가?”
10장 생명과 공동체:기계주의적 생태학을 위하여
‘생명’의 역사│생명의 과학, 생명의 ‘철학’│생명 개념의 정의구역│생명과 공동체│생명의 생태학과 인간
11장 공동체주의와 코뮨주의:코뮨주의의 공간성에 관하여
코뮨주의│코뮨│‘세계’의 내부성│공동체주의와 내부성│코뮨주의와 외부성│두 가지 공동체

후주│참고문헌│찾아보기



∎ 책 소개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맑스주의라는 이념의 대지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불모의 땅처럼 보였다. 누구도 그 땅에 다시 씨를 뿌릴 것 같지 않았고, 씨를 뿌린들 땅 속에서 그대로 썩어버리고 말 것 같았다. 그러나 ‘모두’에게 그 땅이 떠나야 할 폐허였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도 세계적으로 적지 않은 학자들이 ‘맑스주의’의 자양분 아래 새로운 사유를 시도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의 공세가 전 지구적 양상으로 펼쳐지는 만큼 그것을 넘어서려는 시도들이 ‘맑스주의’의 이름 아래 계속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책 『미-래(未來:아직 오지 않은!)의 맑스주의』 또한 그 폐허에 남아 불모의 땅을 다시 생성과 창조의 땅으로 만들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한 지식인의 지적 결과물이다.


“왜 사회주의는 망했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새로운 길 찾기

레닌의 동상이 끌어내려졌던 1991년, 그해에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갇혀 있던 감옥에서 이진경은 사회주의 몰락의 소식을 듣게 된다. 사회주의가 몰락한 세상에 사회주의자로 실형을 살고 있는 기막힌 역설적 상황에 부딪혔던 그는, “대체 사회주의는 왜 망했고 자본주의는 왜 망하지 않았을까?”라는 물음에 스스로 답하기 위해 불모의 대지를 헤집으며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사회주의 사회 또한 자본주의 사회 못지않은 ‘근대’사회였음을 발견한 후 시작한 근대성에 대한 탐구였다. “근대성이란 어떤 것이고 무엇을 통해 작동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은 그를 근대철학의 문제설정에 대한 연구로 몰고 갔으며, 푸코와 만나게 했고, 들뢰즈·가타리와 마주치게 했다. 그는 연이어 근대적 습속들 및 감각에 대한 연구를 세상에 내놓았고, 그 와중에 근대성의 기원을 연구하고 있던 <수유연구실>과 만나 현재의 <연구공간 수유+너머>라는 지식코뮨을 형성했다. 이런 그의 지적 여정을 보며 ‘정통 맑스주의’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그에게 ‘변절’의 이름표를 달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수입 지식인’으로 폄하하기도 했으며, 또 다른 이들은 ‘공상적 몽상가’라며 비난했다.

그러나 이진경은 스스로 말하듯 맑스주의라는 땅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으며, 이른바 탈근대 철학자들과의 만남이나 과학 분야의 저술과의 만남, 또 불교철학과의 만남 등으로 인해 오히려 맑스주의가 ‘희망’의 일반적 이름이 될 수 있는 새로운 근거들을 발견했다. 인간중심주의적 사고에 갇혀 있던 기존의 맑스주의를 뒤엎는 새로운 사유는 바로 이런 마주침들을 통해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제, 어쩌면 정통 맑스주의자들은 “이게 맑스주의냐?”고 또 한번 성토할지도 모를 새로운 맑스주의를 이진경을 통해 만나게 된다.


코뮨주의―공산주의도 공동체주의도 아닌 지금-여기의 미래

이진경은 새로운 사회관계를 구성하는 모델로 ‘코뮨주의’를 말해왔다. 그는 기존 맑스주의에서 자본주의 다음에 올 생산양식으로 정의했던 “생산수단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의 공산주의와 구별하여 이 말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코뮨’이란 외래어와 ‘주의’라는 한자말이 결합된 이 이상한 조어가 ‘communism’의 번역어인 ‘공산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새로운 느낌을 주기 위해 공산주의라는 낡은 말 대신 코뮨주의라는 말을 택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는 communism을 코뮨(commune)이란 말에 ‘ism’을 붙인 것으로 보자는 제안을 한다. 이렇게 볼 때 communism의 어원학적 의미는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집합체로서 ‘코뮨’이라는 말로 소급된다.

코뮨이란 ‘함께’, ‘묶음’ 등을 뜻하는 ‘com’과 ‘선물’을 뜻하는 ‘munis’가 결합된 것이다. 즉 선물을 주는 방식으로 결합된 관계가 바로 코뮨인 것이다. 선물의 본질은 ‘타인에 대한 배려’고, 선물을 주는 사람은 그러한 배려를 통해 자신의 기쁨을 얻는다. 또한 그것은 그러한 배려를 통해 자신을 배려한다. 코뮨주의란 이처럼 타인과의 상호적인 배려, 아니 심지어 되돌아오는 결과에 대한 계산 없이 일방적으로 선물을 줌으로써 상생적인 삶을 추구하는 관계를 지칭한다. 이는 이미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함께 생산하고 함께 소유한다”는 의미의 공산주의에 갇혀버린 코뮤니즘에서 벗어나 코뮨적 관계, 상생적 삶을 추구하는 관계를 표현하는 개념으로 사용할 수 있다. 공산주의와 좀더 명확하게 구별하기 위해서 우리는 commune-ism이라는 용어를 거꾸로 ‘코뮨주의’라는 개념에서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 본문 382~3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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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6 15:26 2007/12/0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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