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후기……를 가장한 몇 가지 개인적 소회들    

2년 전인 2009년 12월 그린비출판사에 입사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프리즘 총서’나 『알튀세르 효과』라는 기획이 존재하는지도 몰랐습니다. 들어오고 나서야 그린비에서 ‘프리즘 총서’라는 대기획(?)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 다음 달인 2010년 1월 ‘프리즘 총서’ 첫 번째 책인 『이집트인 모세』가 출간됐습니다. 그리고 그즈음 저는 이 총서의 두 번째 책인 피에르 마슈레의 『헤겔 또는 스피노자』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이 책은 제가 그린비에서 맡은 첫 번째 책이자, ‘프리즘 총서’의 기획위원이신 진태원 선생님과 함께 작업한 첫 번째 책입니다.

‘프리즘 총서’(그리고 『알튀세르 효과』)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얼마 뒤 저는 ‘프리즘 총서’ 담당을 맡아, 난생 처음으로 ‘총서 담당자’라는 걸 해보게 되었습니다. 또 ‘알튀세르 효과’라는 제목의 책이 2009년부터 기획되었고 계속 준비 중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물론 그땐 이 책이 제게 이토록 중요한 책이 될 줄 몰랐죠). 프리즘 총서 담당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알튀세르 효과』를 가지고 ‘심포지엄’을 개최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덕분(?)에 이번엔 또 난생 처음으로 ‘심포지엄’ 준비라는 걸 해보게 됐고, 2010년 8월 25일 서교동 <상상마당>에서 ‘알튀세르 효과’ 심포지엄이 (성공리에?!) 개최됐습니다. 그 뒤 본격(!)적으로 책 출간 준비에 들어가 올 초까지 각 선생님들께 원고를 받았고, 올해 4월경에 『알튀세르 효과』 편집에 들어갔습니다. 워낙 준비 기간이 길어서였는지 일단 작업에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될 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작업 시작한 지 7개월여가 지난 후에야 『알튀세르 효과』가 책 모양을 갖추고 출간됐습니다. 23명의 저자와 역자, 19편의 글, 872쪽의 분량, 7개월(조금 과장하면 1년 반) 이상의 작업, 『알튀세르 효과』는 규모 면에서나 작업 기간 면에서나 제가 처음 맡은 ‘대작’입니다.

이렇게 『알튀세르 효과』 작업은 ‘처음 해본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만큼 어리둥절하기도 했고 때론 힘들기도 했지만, 또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습니다(그걸 다 풀어 내지 못해 아쉬울 따름입니다). 지금 당장의 제 느낌으론 『알튀세르 효과』는 프리즘 총서 담당 편집자로서, 그린비출판사의 한 일원으로서, 한 명의 편집자로서 일종의 ‘중간 결산’쯤 되는 책인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나중에 가서야, 어쩌면 먼 훗날에야 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고작 한 권의 책에 제가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그만큼 이 책을 작업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에 쉽게 두려워하는 제 기준에서) 많은 경험을 했고, 많은 걸 얻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이제까지의 내 편집자 생활을 되돌아 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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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은이로서 바라는 것은, 이 책의 제목인 '알튀세르 효과'가 단지 과거 시제로 남게 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한 효과는 현재 시제로 촉발되고 확산되고 심화되어야 할 뿐 아니라 미래에도 거듭 다시 일어나야 할 것이다."
─진태원, 『알튀세르 효과』, 「서론」

『알튀세르 효과』 자체에 관해서도 한마디 해야 하겠죠. 『알튀세르 효과』 편집자이자 한 명의 독자로서, (이 책에 참여하신 많은 저자·역자 선생님들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이 책이 알튀세르에 관한 의미 있는 토론들을 낳을 수 있기를, 또 다른 ‘알튀세르 효과’를 산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책을 작업하면서 이런저런 고민들을 해볼 수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제게도 나름의 ‘효과’를 낳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그 여러 효과 중 하나를 언급해 보고 싶습니다. 물론 이론 차원에서 뭔가를 이야기하는 건 제 몫이 아니고, 또 제게 그럴 역량이 있지도 않습니다. 저는 이 책의 ‘이론적’ 의의보다는, 제가 『알튀세르 효과』가 실제로 효과를 낳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도록 해준 ‘조건’에 관해, 작업 과정에서 느끼게 된 그 조건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솔직히 『알튀세르 효과』에 실린 글들 대부분이 아주 쉬운 편은 아닙니다. 어떤 글들은 매우 어려워 도무지 이해가 안 돼 힘들기도 했습니다(어떤 글들이 그랬는지 굳이 밝히진 않겠습니다……만, 그런 글이 많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첫 독자인 저는 『알튀세르 효과』가 ‘많은’ 독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이는 이 책에 담긴 여러 노력 때문이기도 하지만(예를 들면 가독성 있는 문장, 훌륭한 번역, 충실한 주석 등등), 기본적으로는 알튀세르의 저작이 다수 ‘번역’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는 알튀세르의 저작은 다음과 같습니다(빠진 글이나 책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마르크스를 위하여』, 고길환·이화숙 옮김, 백의, 1990.
『레닌과 철학』, 이진수 옮김, 백의, 1991.
『아미엥에서의 주장』, 김동수 옮김, 솔, 1991.
(알튀세르 외) 『맑스주의의 역사』, 윤소영 엮음, 민맥, 1991.
(알튀세르 외) 『자본론을 읽는다』, 김진엽 옮김, 두레, 1991.
『당내에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 될 것』, 이진경 엮음, 새길, 1992.
『마침내 맑스주의의 위기가』, 김경민 엮음, 백의, 1992.
『마키아벨리의 고독』, 김석민 옮김, 새길, 1992.
(알튀세르 외) 『역사적 맑스주의』, 서관모 엮음, 새길, 1993.
(알튀세르 외) 『알튀세르와 라캉』, 윤소영 옮김, 공감, 1995.
『철학과 맑스주의: 우발성의 유물론을 위하여』, 서관모․백승욱 편역, 새길, 1996.
『맑스를 위하여』, 이종영 옮김, 백의, 1997.
『철학에 대하여』, 서관모·백승욱 옮김, 동문선, 1997.
『재생산에 대하여』,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7.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권은미 옮김, 이매진, 2008.
(알튀세르 외), 『레닌과 미래의 혁명』, 그린비, 2008.

이 목록은 한계가 있습니다. 알튀세르 저작이 대체로 90년대 초에 번역되었기 때문에 번역이 아주 좋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또 ‘역사의 주체’ 문제를 다루는 『존 루이스에 대한 답변』이나 이전의 ‘이론주의적 편향’을 ‘자기 비판’하는 『자기 비판의 요소들』 같은 몇몇 주요 저작이 아직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그 외에 사후 발간된 유고들과 서한들도 온전히 한국어로 번역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아직 완전한 ‘한국어’ 알튀세르 저작 목록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이 ‘완전함’에 목을 맬 필요는 없겠지만요).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앞선 세대가 번역해 남겨 준 많은 알튀세르 저작을 갖고 있고(이는 당연히 알튀세르가 80~90년대 한국 이론계에 미친 영향력을, 그리고 당시에 알튀세르 사상을 한국에 소개하고 번역하려 한 여러 연구자들의 열정적인 노력을 입증해 주는 증거입니다), 이 여러 저작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한국에서 루이 알튀세르는 1차 저작 다수가 번역되어 있는 흔치 않은 (현대) 철학자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 때문에 저는 『알튀세르 효과』가 ‘이해 가능’하고 나아가 ‘토론들’을 낳으리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앞서 말했듯, 『알튀세르 효과』 작업을 할 때 이해가 가지 않는 표현들이 종종 나오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한국어판 알튀세르 저작을 참고할 수 있었고(사실을 말하자면 알튀세르 저작이 번역되어 있으니 참고‘해야만’ 했고), 처음엔 이해가 안 됐던 부분들도 알튀세르 저작을 읽으면 이해가 되는 경험도 여러 번 할 수 있었습니다(이론서를 편집하면서 쉽게 할 수 없는 경험). 저는 알튀세르 저작이 거의 번역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가 이 책을 편집하는 상상을 자주 했습니다. 그런 상황이었다면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나와도 큰 문제가 없는 한에서 대충 넘어가며 작업했을 테고, 제게 이 책은 뭔가 중요한 얘기를 하는 것 같긴 한데 내 이해력의 범위를 넘어서는 논의를 하는, 마냥 추상적인 한 권의 이론서가 됐을 겁니다. 그리고 그랬다면 제가 이 책에 그리 깊이 빠져들지도 않았을 테고, 이 책이 제게 중요한 책이 되지도 않았을 테죠(저는 이게 이 책의 많은 독자들에게 해당될 수 있을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알튀세르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한국어로 알튀세르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알튀세르 자신의 말들에 비추어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 책을 통해 알튀세르의 사유들을 좀더 잘 이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 모든 것이 알튀세르의 저작들이(그리고 이 책에서 다뤄지는 다른 사상가들의 저작이) 번역되어 있다는 기본적인 조건 덕분입니다. 이전까지는 이 ‘기본 조건’의 중요성을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이 책을 작업하면서야 비로소, ‘알튀세르 저작이 번역되어 있다’는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 『알튀세르 효과』라는 책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정말 중요한 조건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마도 『알튀세르 효과』는 운이 좋은 책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1차 저작이 번역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1차 저작만큼이나 어려운 2차 저작이 출간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걸 생각해 보면, 『알튀세르 효과』는 그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에 있습니다(물론 알튀세르에게 유리한 조건이 이것 하나만은 아닐 겁니다!). 제가 『알튀세르 효과』를 작업하면서 유달리 큰 기대를 품었던 것도 이 ‘조건’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고, 제가 그 조건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알튀세르 효과』는 알튀세르가 실제로 이야기한 것들과 그가 남긴 유산들을 살펴본다는, 그리고 자신을 통해 새로운 ‘알튀세르 효과’를 산출한다는 소명을 다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제 (알튀세르가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알튀세르 효과』를 집어서, 읽고, 다시 알튀세르에게 돌아가 그를 다시 읽고, 함께 이야기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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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태원 선생님과의 인터뷰 영상으로도 곧 찾아 뵙겠습니다! 커밍 쑨!!!!

개인적으로 편집자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존재보다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 만큼 누군가에게(정확히 말하면 저역자들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말은 들을 수 있지만,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말을 할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원고를 받은 뒤부터 책이 나올 때까지 ‘혼자서’(디자이너와 함께) 작업해야 하는 것이 편집자의 일이라(편집자의 손을 떠난 후엔 인쇄·제본·유통 등의 과정을 거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는 게 못난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편집후기는 제 말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이 기회를 빌려 슬쩍 제가 받은 도움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연히, 진태원 선생님을 비롯해 이 책에 참여해 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여러 도움을 받았습니다. 모두 좋은 원고를 주셨고, 제 작업에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중 몇 분은 마지막까지 제 귀찮은 문의들과 요청들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부족한 편집자 탓에 힘드셨을, 그리고 끝까지 친절하게 잘 받아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역시 당연히, 그린비 사람들에게도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알튀세르 효과 심포지엄’ 에서부터 『알튀세르 효과』 출간까지, 매순간 그들에게 도움을 받았고, 특히 『알튀세르 효과』 마무리 작업을 할 때는 거의 모든 그린비 사람들의 지원을 받기도 했습니다(이걸 ‘도움’이라고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냥 ‘함께 작업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뿐 아니라, 일이 잘 안 돼서 제가 힘들어할 때, 일이 몰려 고생할 때, 일이 잘 풀려 기뻐할 때, 다들 격려와 위로를 해주었고 함께 즐거워해 주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제게 편집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모든 것이 잘 될 수 있도록 힘쓰는 존재입니다. 그런 제가 이런 공적인 공간에서 감사함을 드러내는 게 너무나 낯설지만, 이번 한 번만큼은 눈 딱 감고,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새겨 두고 싶습니다.

- 편집부 김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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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와 저자·역자들의 '소통'의 현장 교정지!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손길과 애정이 들어갑니다.

알튀세르 효과 - 10점
진태원 엮음, 강희경 외 옮김/그린비
2011/12/13 09:00 2011/12/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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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비출판사 :: 『알튀세르 효과』편집 후기 - 처음 해본 일들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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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8% 2011/12/13 15:06

    진태원 선생님 모습이 참 지적이시네요. 선생님 글과 잘 어울리는 외모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참으로 긴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노고로 나왔다는 것을 '두께'로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네요. 열심히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 그린비 2011/12/13 15:20

      몸안에서 나오는 아우라(!)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읭? ㅎㅎㅎㅎ;;)
      긴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알튀세르 효과』, 많이 사랑해주세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