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활보

정경미

나는 요즘 ‘장애인 활동 보조’ 일을 하고 있다. 장애인 활동 보조란, 혼자서는 움직이기 힘든 1급 중증 장애인들의 손발이 되어 먹고, 씻고, 옷 입고, 용변 보고, 외출하고 하는… 생활에 꼭 필요한 활동을 도와주는 일이다. 보수 안 받고 하는 자원봉사는 아니고, 복지부 예산으로 정부에서 급료를 받는다.

‘활동 보조’라는 장애인 지원 제도가 처음 생긴 것은 2007년. 이전에는 장애를 개인의 불행으로 보고 혼자 감내하거나 가족들이 책임지도록 했다. 그러나 장애는 피하고 싶은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삶의 다른 조건이며 우리가 함께 안고 있는 사회 문제라는 새로운 인식이 확산되었다. 장애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누군가를 장애인으로 만드는 편협한 인식과 폭력적인 현실이 있다는 것. 이것을 바꾸자는 취지에서 2007년 처음 ‘장애인 활동 보조’라는 제도가 시행되었다. 지금으로서는 참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 제도가 처음 생기기까지는 고립된 생활을 고통 속에서 감내해야 했던 많은 장애인들의 자유를 위한 지난한 투쟁의 세월이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스팔트 도로에 내려온 사람들, 장애인 활동지원제도가 시행되기 전 많은 이들의 싸움이 있었다.

내가 활보 일을 시작한 지는 이제 10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문자의 세계에서만 놀았다. 오랫동안 학교에 다녔고, 문학판 주변을 기웃거리며 나도 어떻게 이름을 얻어 글 쓰는 일로 밥벌이를 좀 해볼까 궁리했었다. 일이라고 해봐야 애들 독서 논술 가르치는 정도. 한 번도 몸 쓰는 일에 전념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저 남에게 주워들은 소리에 불과한 현란한 언어들로 치장한 나의 삶이 완전히 엉터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번도 내 몸이 속한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 관심과 애정을 가져본 적이 없이 허황한 욕심을 좇아 살다가 어느 순간 보니 나는 세상 어디에도 발 붙일 곳이 없었다. 그나마 그동안 내 삶의 유일한 현장이었던 언어에 대한 극심한 혐오증이 찾아왔다. 책을 읽을 수가 없고, 글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문자를 보면 구역질이 올라왔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그동안 나의 생활이었는데 그것을 할 수 없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한 가운데 나는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오면서 그동안 한 번도 그 존재를 느껴본 적이 없는 내 몸을 하나의 낯선 타자로 새롭게 만나게 되었다. 다 귀찮다! 남의 말 다 듣기 싫다! 하면서 하루 종일 깜깜한 동굴 같은 데 웅크리고 있다가, 누가 건드리면 격렬한 발작 증세를 보이는 자신이 당황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강의니 세미나니 원고 쓰던 거니… 하던 일을 다 접고 쉴 수밖에 없었다. 때 되면 밥 먹고, 하루 종일 걷고, 아침에 저절로 눈이 떠질 때까지 잠을 푹 자고… 이렇게 한 일 년을 보낸 것 같다. 그러고 나니까 세상일에 아무 관심도 없고, 무감각한 몸에 약간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것도 눈치가 보이고, 이제는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무슨 일이고 해야겠다고 일자리를 찾던 중에 우연히 장애인 활동 보조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일을 하면서 세상이 새롭게 보인다. 몸 쓰는 일의 축복! 나는 요즘 감이당 공부하는 이틀 빼고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보통 하루에 12시간 정도의 일을 하는데… 몸은 고단해도 마음이 너무 편안하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쉬는 시간이 주어져도 쉬지를 못 했다.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 나는 쉴 수 있게 되었다. 일을 접고 쉬는 게 아니라, 일을 하는 게 쉬는 거다. 그게 왜 그런고 하니… 이 일은 ‘같이’ 하기 때문이다. 내가 오후에 활보하는 제이(J)는 전에 요리대회에 나가서 1등상을 받았다고 한다. ‘피자 치즈 떡볶이’를 만들어서. 아니, 손발을 못 쓰는데 어떻게 떡볶이를 만들지?

물론, 제이 혼자서는 떡볶이를 못 만든다. 하지만 활보하고 같이, 활보의 손발을 빌려서 떡볶이를 만들어 요리대회에서 1등까지 한 것이다. 제이와 활보가 힘을 합쳐서 ‘플러스 알파’의 활동을 만들어낸 것. 활보 일은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못 하는 일을 대신 해 주는 게 아니라 두 개의 다른 신체가 한 몸이 되어 만들어내는 새로운 활동이다. 이전에 나는 누군가와 이렇게 한 몸이 되어 어떤 활동을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혼자서 열심히 해서 뭔가 번듯한 걸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뭘 해도 피곤했다. 그런데 활보 일은 같이 하니까… 그것도 무슨 특별한 일이 아니라 오줌 누고, 똥 누고, 밥 먹고 하는… 평범한 일을 같이 하니까… 오랜 시간 일해도 피로한 줄을 모른다.

그건 그냥, 평소 나도 모르게 해오던 일이 아닌가. 그런데 그것도 그냥 되는 일이 아니구나. 수십 년간 내 몸이 묵묵히 해주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당연한 듯이 누리고 거기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불평불만을 쌓아왔구나. 내가 그동안 자각하지 못했던, 보이지 않게 내 삶을 떠받치고 있었던 많은 삶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이 일을 하면서 나는 깨닫는다. 내가 아팠던 게 몸을 너무 안 써서였구나! 언어의 표상 속에 꽁꽁 묶여 있던 몸이 마음껏 세상을 활보하고 싶어서였구나! 생각이 너무 많아서 몸이 막힌 거였구나! 생각이 많다는 건 욕심이 많다는 뜻이다. 몸이 따라 주지 않는 이런 저런 욕심들을 좇다 보니 몸이 지쳐서 반란을 일으킨 거였구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 「언터처블」의 한 장면.

얼마 전에는 아침에 늦잠을 잤다. 화들짝 놀라 허겁지겁 달려가 보니 에쓰(S)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옆으로 누워 있다.

- 뭐해?
- 오줌 참는 거야.
- 그러고 있으면 오줌이 안 마려워?
- 이러고 있으면 땀 나잖아. 그러면 물기가 땀으로 나오니까 오줌이 덜 찰 거잖아.

내가 아침에 활보하는 에쓰는 밤새 목이 빠지게 나를 기다린다. 내가 가야 오줌을 눌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서 오줌을 누고 나면 에쓰의 표정이… 세상에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는, 완전 지복 그 자체이다. 사람이 오줌을 시원하게 누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것! 활보 일을 하면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허황한 욕심으로 인생을 낭비하고 있었던가 부끄러워진다.

활보하는 짬짬이 쓰는 글을 나누고 싶다. 참으로 어이없고 화가 나는 때도 있지만, 너무너무 웃기는 일이 많다. 활보 일을 하면서 나는 많이 건강해졌는데 그 이유가… 몸을 많이 쓰니까 쓸데없는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많이 웃기 때문이다. 정말, 활보하는 내내 웃는다. 별일 아닌데도… 나하고는 다른 신체와 호흡을 맞춰서 무언가를 같이 하는 상황 자체가 우스울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에쓰가 똥을 누고 나면 내가 항문을 휴지로 닦아주는데, 내 눈에는 에쓰의 항문의 위치가 정확하게 안 보인다. 대충 위치를 가늠해서 닦는데… 에쓰가 인상을 팍 쓰면서 “언니, 거기 아니거든?”이라고 할 때. 혹은, 누가 말 안 듣고 애먹일 때 우리가 흔히 하는 말-“손 좀 봐야겠다”라는 말을, 손 대신 발을 쓰는 상황의 에쓰는 “걔, 발 좀 봐야겠더라”라고 할 때… 웃음이 터져나온다.

활보 일을 하면서 내가 몰랐던 ‘다른’ 삶을 발견한다. 어떤 힘든 상황에도 압도당하지 않고 커다란 웃음으로 그것을 힘껏 끌어안음으로써 자신이 처한 삶의 조건을 바꾸고, 그 속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꿋꿋하고 천진하고 기괴하고 솔직한 친구들과 만나 내가 어떤 감동과 좌절을 겪는지, 좌충우돌 헤매면서 길을 묻는 내 마음의 활보를, 당신과 함께 하고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제 제이(J)와 에쓰(S)를 만나러 갑니다!

정경미
사십사 년째 시인 지망생이다. 어쩌면 전생의 더 많은 세월이 있는지도. 나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최선을 다해 써왔는데 이건 시가 아니라고 하니 도대체 언제 시를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지금까지 기다려온 게 억울해서… 활보 일 하면서, 감이당 공부 하면서, 나는 여전히… 시인 지망생이다. 끙!

※ 활·보 활보(闊步) 코너가 시작됩니다. 활보는 크고 힘차게 걷는 걸음을 의미합니다. 또, 장애인 활동보조를 줄여서 '활보'라고 합니다. 활보의 활보, 이름만 들어도 굉장히 힘차고 건강한 제목이지 않습니까? ^^ 활·보 활보는 매주 목요일에 함께합니다~ 그럼, 다음주에 만나요! 

2012/05/10 09:00 2012/05/10 09:00
RSS를 구독하시면 더욱 편하게 그린비의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 ]

trackback url :: http://greenbee.co.kr/blog/trackback/1755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화랑이 2012/06/19 19:38

    전 정경미님이 그린비출판사 직원인줄......' ㅎㅎㅎ 활보 힘들긴 해도 분명 보람된 직업이라 생각됩니다. 좋은 글 잘보고 가요.^^

    • 그린비 2012/06/20 12:44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