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다이아 파마
활·보 활보(闊步)
2012/05/31 09:00
물방울 다이아 파마
제이네 동네에 미용실이 새로 생겼다. 개업 기념으로 파마를 만구천 원에 해준단다. 제이는 올해 들어서 미용실에 한 번도 못 갔다. 파마 한 번 하면 요즘 보통 4~5만 원이다. 복지 일자리에서 나오는 월급 25만 원 중에 활보 자부담비, 청약저축, 교회모임 회비 등등 해서 낼 거 다 내고 나면, 한 달에 6~7만 원으로 생활해야 하는 제이로서는 큰맘 먹어야 된다. 평소 제이는 2만원에 파마 해주는 아는 미용실을 명절 때나 가끔 이용했다. 그런데 최근 제이 어머니가 이 새로 생긴 미용실에 다녀와서 자랑을 하셨다. “세상에나 만상에나, 그 집에 ‘물방울 다이아’ 파마가 그렇게나 멋지단다!” 이 말을 듣고 제이도 거기 가서 물방울 다이아 파마가 하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들썩 한다.

물방울 다이아라니! 그 파마를 하면 머릿결의 웨이브가 물방울처럼 함초롬히 출렁이고 다이아몬드처럼 빛난다는 것일까? 제이는 도대체 이 물방울 다이아 파마가 궁금해서 못 견디겠는 것이다. 하지만 시절은 바야흐로 월말. 쥐꼬리만 한 월급은 벌써 거의 다 썼고, 다음 달 월급 나오려면 아직 한참 기다려야 하는 보릿고개를 넘는 중에 한 가지 제이가 기다리는 수입이 있었으니… 그것은 아르바이트 보수를 받는 것이다. 제이는 지난 한 달간 박물관, 미술관, 체육관, 은행 등등을 돌아다니면서 그곳에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는가를 알아보는 설문조사 아르바이트를 했다. 의뢰받은 총 12건의 시설 조사 중에 11개는 끝냈고, 오늘 마지막으로 보험회사를 찾아가서 조사를 마치면 보수를 받을 수 있다. 이게 건당 3만원이다. 이 돈 받으면 반드시 물방울 다이아 파마를 하리라! 제이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제이는 오늘 복장에 신경을 좀 썼다. 흰 바탕에 까만 줄무늬 원피스. 그 위에 얇은 가디건을 걸쳤다. 그리고 장식이 달린 까만 천 목걸이. 줄무늬가 경쾌한 느낌을 주면서도, 흰색과 까만색의 배합이 뭔가… 격식을 갖춘 느낌이다. 원래 제이는 분홍색, 하늘색 같은 밝은 색 옷의 화사한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오늘은 일하러 가느라 점잖게 보이려고 신경을 좀 쓴 것 같다. 오늘 우리의 외출은 지하철 정거장으로 치면 일곱 정거장. 비교적 가까운 거리다. 지하철 노선도 검색해 보니 17분 걸린다고 나온다. 휠체어 타고 가자면 시간이 더 걸릴 거니까 우리는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집에서 3호선 타고 가다가 충무로역에서 4호선 갈아타고 한 정거장만 더 가면 된다.
충무로역의 환승 통로 계단은 70개다. 이곳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리프트를 타야 된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기계 연주음을 울리면서, 좌우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천천히 70개의 계단을 오르는 일에 우리는 이제 익숙해졌다. 그런데 충무로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고 명동역에 내렸더니 명동역에도 엘리베이터가 없다. 리프트를 두 번이나 타고 계단을 올라가야 된다. 약간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물방울 다이아, 물방울 다이아… 오늘 일만 잘 마무리하면 물방울 다이아 파마를 할 수 있다. 지난주에 우리는 두 군데 보험회사를 찾아갔는데 휠체어를 탄 제이의 모습을 보고는 자세하게 설명도 해주지 않고 ‘가입 불가’라고 했다. 장애는 질병이 아니다. 특정한 신체 조건이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암에 더 잘 걸리는 게 아닌데 왜 보험 가입이 안 된다는 걸까. 의아했지만 보험회사 직원들은 모두 바빠서 우리하고 길게 얘기할 시간이 없었다. 오늘 가는 보험회사는 과연 어떨지…
명동역에서 두 번 리프트를 타고 역사 바깥으로 나갔더니 우리가 찾아가야 하는 보험회사는 길 건너편에 있다. 그런데 근처를 아무리 둘러봐도 횡단보도가 없다. 어떻게 길을 건너지?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지나가던 어떤 청년이 여기로 조금 내려가면 지하상가가 있으니 거기를 통해서 길을 건너면 된다고 알려준다. 그런데 지하상가 계단은 어떻게 내려가지? 거기도 리프트가 있다고, 청년이 친절하게도 지하상가 관리실에 전화를 해서 리프트 좀 태워달라고 말하면서 직원을 불러준다. 감동! 어디를 가나 이렇게 주위를 배려하는 상냥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가끔 그 배려가 지나쳐서 불쾌해지는 경우도 있으니… 오늘도 집을 나설 때 지하철역으로 막 들어서는 제이를 보고 어떤 할아버지가 손을 번쩍 들면서 “어, 어디가?”라고 하신다. 내가 제이를 쳐다보며 아는 분이야? 하니까 제이가 아니라고 한다. 모르는 사람이 친한 척하며 애들 대하듯 말을 할 때 약간 당황스럽다. 또는 다정하게 휠체어를 밀어 주면서 “아이구 예쁜데 어쩌다가…” 하면서 제이를 보고 혀를 차는 아주머니도 있다. 전동 휠체어는 전기로 가는 거니까 뒤에서 밀 필요가 없고, 민다고 밀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지하상가의 리프트는 명동의 전통을 말해 주듯 아주 오래된 것이었다. 보통 리프트의 안전바는 앞뒤로 두 개가 있는데 여기는 앞뒤 전체가 하나로 통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밑에 휠체어가 올라타도록 되어 있는 철판도 좀 작다. 직원을 부르는 호출 버튼도, 버튼이 아니라 인터폰이다. 뭐랄까… 스마트폰이 나온 시대에 옛날 구식 다이알 돌리는 전화기 사용하는 기분이랄까. 제이가 리프트를 타고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나는 계단 아래 상가에서 파는 김밥을 한 줄 사와서 선 채로 먹는다. 아침에 급하게 나오느라 밥을 못 먹었는데 리프트를 몇 번이나 타는 동안 시간은 또 어느새 점심때가 가까워오는 탓이다. 활보는 항상 배가 고프다. 제이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 이상하네. 전에 활보도 뭐 할 거 있으면 맨날 “먹고 하자”고 하더니, 언니도 똑같네?
- 그래 이 손가락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는 공주님아, 공주님은 휠체어 타고 다니니까 힘든 줄 모르지만, 머슴 활보 다리에는 수시로 밧데리를 충전해 줘야 한다네!
지하상가의 계단을 내려와서 또 올라가는 계단의 리프트로 바꾸어 타고 있는 제이의 입에도 김밥을 한 개 넣어준다. 우리는 길거리를 다니면서 뭘 잘 먹는다. 내가 항상 배가 고프므로. 그런데 앉아서 먹을 시간은 없고 해서 걸어 다니면서 간단하게 김밥이니 떡이니 하는 걸로 끼니를 때우는 때가 많다. 이때 혼자 먹기 미안해서 제이한테도 좀 주면, 제이는 그것을 한 번도 안 먹는다고 한 적이 없다. 주는 대로 냠냠 맛있게 잘 먹으면서 나보고만 먹보 취급을 하다니! 물론, 내가 쫌 많이 먹기는 한다. 식당에서 밥 먹을 때 제이 밥을 많이 뺏어 먹기는 한다. 제이는 음식을 빨리 씹지 못하니까… 제이 한 숟갈, 나 세 숟갈… 이렇게 다정하게 같이 밥을 먹다 보면 어느새 내 그릇은 텅 비고, 제이 밥 떠먹여 주면서 “아이구 이거 많아서 다 먹겠냐” 하면서 제이 입에 들어갈 게 내 입에 들어가는 때가 종종 있다. 근데… 오늘 김밥은 두 조각 먹고 나서, 세 개째 먹으려는데… 기분이 안 좋다. 맛이 약간 간 것 같다. 벌써 초여름이라 음식이 금방 상하는 모양이다. 게다가 지하상가에서 파는 김밥이란 게 호일에 싸놓으면 어제 걸 팔아도 알 수가 없으니까… 이렇게 밖에서 아무거나 대충 먹으면서 끼니를 때우면 체력이 떨어지니 집에서 아침 꼭 챙겨 먹고 도시락으로 주먹밥이라도 싸가지고 다니자 마음은 먹지만, 맨날 아침마다 허겁지겁 나오기 바빠서 그게 잘 안 된다.
지하상가를 통해 길을 건너서 우리는 마침내 목적지를 목전에 두게 되었다. 헥헥, 도대체 리프트를 몇 번이나 탄 거야! 환승하면서 한 번, 지하철 내려서 역 바깥으로 나오면서 두 번, 길 건너면서 두 번… 리프트 타다가 멀미하겠네! 그래도 다행히 보험회사가 있는 건물은 길 건너 골목을 들어서자 바로 있었다. 그런데 출입구가… 계단 두 칸을 올라가야 된다. 경사로가 없다. 계단 턱이 높지 않은 경우에는 휠체어를 뒤로 기울여 앞바퀴를 들어서 계단 턱에 올라설 수 있는데, 여기는 계단이 두 개인 데다가 계단 하나의 턱이 벽돌 두께만 해서 휠체어를 기울여서 올라가기가 힘들다. 어쩌지? 나는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 관리인에게 묻는다. 관리인은 출입구 왼쪽, 주차장을 통해 들어가는 쪽문을 알려준다. 거기는 문턱이 낮아서 휠체어를 기울여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휴우… 겨우 다 왔네! 사무실은 거의 비어 있었다. 다들 출장을 나간 모양이다. 사무실을 지키는 설계사 한 분이 차를 내오며 상담을 해주었다. 지난주에 갔던 다른 보험회사들은 1급 장애인이라고 하니 아예 손을 내저었다. 여기는 그렇지는 않았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거부하는 일은 없고 방문심사 후 가입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설계사는 제이의 생년월일, 주소, 한 달 수입 등등을 묻더니 건강보험과 암보험 두 개 합해서 한 달에 5~7만 원 정도 돈을 넣는 걸로 해서 보험가입 신청을 해보겠다고 한다. 그런데 담당의사의 소견서를 제출할 것, 그리고 지금 제이의 수입이 불안정하니 부모님 명의로 가입 신청을 해보겠다고 한다. 그렇게 해도 가입이 꼭 되는 건 아니다. 신청을 해보겠지만 안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확인해야 하는 것은 이 보험회사가 장애인에게 개방되어 있느냐 여부이다. 그런데 이게 참 애매하다. 본인 이름으로 가입을 할 수 없고, 의사 소견서까지 내야 한다면 이건 거의 안 된다는 말인데… 그렇다고 그게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한 게 아니니… 여기서 조사를 마칠 수도 없고, 끝까지 알아보려니 시간도 들고 돈도 든다. 아니, 왜 의사 소견서가 필요하다는 거야? 장애 판정이 지금의 신체 상황을 말해 주고 있는데! 제이는 씩씩거렸다. 게다가 우리의 관심사는 보험 가입이 아니다. 물방울 다이아… 물방울 다이아… 빨리 조사 끝내고 아르바이트비를 받는 것. 행사 기간 끝나기 전에 얼른 새로 생긴 미용실에 가서 그 신비의 물방울 다이아 파마를 해보는 것이다. 역시 돈 버는 일은 쉽지 않다. 앞의 11건의 시설조사를 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는데 마지막에 이렇게 발목이 잡힐 줄이야!
지도에 17분 걸린다는 거리를 한 시간 반이나 걸려서, 리프트를 다섯 번이나 타고 갔는데 일을 제대로 끝내지 못했으니 제이도 나도 기진맥진. 다시 배가 고프다. 하지만 점심 먹을 시간이 없다. 예상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바쁘게 복지 일자리 일터로 가야 한다. 다시 충무로역의 70개의 계단을, 4호선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야 하므로, 이번에는 내려가야 한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저기 까마득한 70개의 계단 아래에서 천천히 기계 연주음을 울리면서 올라오고 있는 리프트를 기다리면서… 고개가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어져서 언제나 꿈을 꾸는 표정의 제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이렇게 중얼거린다.
“그게… 물방울 다이아 파마 말이야… 그거 하면 머리 묶으면 안 되고 풀어 다녀야겠지? 난 묶어 다니는 게 편한데… 하지만 전부터 사람들이 파마머리를 왜 묶어 다니냐 하더라구. 아, 내가 이마가 안 이쁘면 모르겠는데, 이마가 이렇게 예쁜데, 왜 머리를 풀어서 가리고 다녀? 근데… 물방울 다이아 파마는 웨이브가 멋지다니까… 이마 좀 가려도 풀어 다녀야겠지?”
정경미
제이네 동네에 미용실이 새로 생겼다. 개업 기념으로 파마를 만구천 원에 해준단다. 제이는 올해 들어서 미용실에 한 번도 못 갔다. 파마 한 번 하면 요즘 보통 4~5만 원이다. 복지 일자리에서 나오는 월급 25만 원 중에 활보 자부담비, 청약저축, 교회모임 회비 등등 해서 낼 거 다 내고 나면, 한 달에 6~7만 원으로 생활해야 하는 제이로서는 큰맘 먹어야 된다. 평소 제이는 2만원에 파마 해주는 아는 미용실을 명절 때나 가끔 이용했다. 그런데 최근 제이 어머니가 이 새로 생긴 미용실에 다녀와서 자랑을 하셨다. “세상에나 만상에나, 그 집에 ‘물방울 다이아’ 파마가 그렇게나 멋지단다!” 이 말을 듣고 제이도 거기 가서 물방울 다이아 파마가 하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들썩 한다.

이것이 바로 물방울 다이아 파마!!
물방울 다이아라니! 그 파마를 하면 머릿결의 웨이브가 물방울처럼 함초롬히 출렁이고 다이아몬드처럼 빛난다는 것일까? 제이는 도대체 이 물방울 다이아 파마가 궁금해서 못 견디겠는 것이다. 하지만 시절은 바야흐로 월말. 쥐꼬리만 한 월급은 벌써 거의 다 썼고, 다음 달 월급 나오려면 아직 한참 기다려야 하는 보릿고개를 넘는 중에 한 가지 제이가 기다리는 수입이 있었으니… 그것은 아르바이트 보수를 받는 것이다. 제이는 지난 한 달간 박물관, 미술관, 체육관, 은행 등등을 돌아다니면서 그곳에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는가를 알아보는 설문조사 아르바이트를 했다. 의뢰받은 총 12건의 시설 조사 중에 11개는 끝냈고, 오늘 마지막으로 보험회사를 찾아가서 조사를 마치면 보수를 받을 수 있다. 이게 건당 3만원이다. 이 돈 받으면 반드시 물방울 다이아 파마를 하리라! 제이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제이는 오늘 복장에 신경을 좀 썼다. 흰 바탕에 까만 줄무늬 원피스. 그 위에 얇은 가디건을 걸쳤다. 그리고 장식이 달린 까만 천 목걸이. 줄무늬가 경쾌한 느낌을 주면서도, 흰색과 까만색의 배합이 뭔가… 격식을 갖춘 느낌이다. 원래 제이는 분홍색, 하늘색 같은 밝은 색 옷의 화사한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오늘은 일하러 가느라 점잖게 보이려고 신경을 좀 쓴 것 같다. 오늘 우리의 외출은 지하철 정거장으로 치면 일곱 정거장. 비교적 가까운 거리다. 지하철 노선도 검색해 보니 17분 걸린다고 나온다. 휠체어 타고 가자면 시간이 더 걸릴 거니까 우리는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집에서 3호선 타고 가다가 충무로역에서 4호선 갈아타고 한 정거장만 더 가면 된다.
충무로역의 환승 통로 계단은 70개다. 이곳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리프트를 타야 된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기계 연주음을 울리면서, 좌우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천천히 70개의 계단을 오르는 일에 우리는 이제 익숙해졌다. 그런데 충무로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고 명동역에 내렸더니 명동역에도 엘리베이터가 없다. 리프트를 두 번이나 타고 계단을 올라가야 된다. 약간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물방울 다이아, 물방울 다이아… 오늘 일만 잘 마무리하면 물방울 다이아 파마를 할 수 있다. 지난주에 우리는 두 군데 보험회사를 찾아갔는데 휠체어를 탄 제이의 모습을 보고는 자세하게 설명도 해주지 않고 ‘가입 불가’라고 했다. 장애는 질병이 아니다. 특정한 신체 조건이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암에 더 잘 걸리는 게 아닌데 왜 보험 가입이 안 된다는 걸까. 의아했지만 보험회사 직원들은 모두 바빠서 우리하고 길게 얘기할 시간이 없었다. 오늘 가는 보험회사는 과연 어떨지…
명동역에서 두 번 리프트를 타고 역사 바깥으로 나갔더니 우리가 찾아가야 하는 보험회사는 길 건너편에 있다. 그런데 근처를 아무리 둘러봐도 횡단보도가 없다. 어떻게 길을 건너지?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지나가던 어떤 청년이 여기로 조금 내려가면 지하상가가 있으니 거기를 통해서 길을 건너면 된다고 알려준다. 그런데 지하상가 계단은 어떻게 내려가지? 거기도 리프트가 있다고, 청년이 친절하게도 지하상가 관리실에 전화를 해서 리프트 좀 태워달라고 말하면서 직원을 불러준다. 감동! 어디를 가나 이렇게 주위를 배려하는 상냥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가끔 그 배려가 지나쳐서 불쾌해지는 경우도 있으니… 오늘도 집을 나설 때 지하철역으로 막 들어서는 제이를 보고 어떤 할아버지가 손을 번쩍 들면서 “어, 어디가?”라고 하신다. 내가 제이를 쳐다보며 아는 분이야? 하니까 제이가 아니라고 한다. 모르는 사람이 친한 척하며 애들 대하듯 말을 할 때 약간 당황스럽다. 또는 다정하게 휠체어를 밀어 주면서 “아이구 예쁜데 어쩌다가…” 하면서 제이를 보고 혀를 차는 아주머니도 있다. 전동 휠체어는 전기로 가는 거니까 뒤에서 밀 필요가 없고, 민다고 밀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해져야 하는 지하철, 지하상가의 리프트
지하상가의 리프트는 명동의 전통을 말해 주듯 아주 오래된 것이었다. 보통 리프트의 안전바는 앞뒤로 두 개가 있는데 여기는 앞뒤 전체가 하나로 통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밑에 휠체어가 올라타도록 되어 있는 철판도 좀 작다. 직원을 부르는 호출 버튼도, 버튼이 아니라 인터폰이다. 뭐랄까… 스마트폰이 나온 시대에 옛날 구식 다이알 돌리는 전화기 사용하는 기분이랄까. 제이가 리프트를 타고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나는 계단 아래 상가에서 파는 김밥을 한 줄 사와서 선 채로 먹는다. 아침에 급하게 나오느라 밥을 못 먹었는데 리프트를 몇 번이나 타는 동안 시간은 또 어느새 점심때가 가까워오는 탓이다. 활보는 항상 배가 고프다. 제이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 이상하네. 전에 활보도 뭐 할 거 있으면 맨날 “먹고 하자”고 하더니, 언니도 똑같네?
- 그래 이 손가락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는 공주님아, 공주님은 휠체어 타고 다니니까 힘든 줄 모르지만, 머슴 활보 다리에는 수시로 밧데리를 충전해 줘야 한다네!
지하상가의 계단을 내려와서 또 올라가는 계단의 리프트로 바꾸어 타고 있는 제이의 입에도 김밥을 한 개 넣어준다. 우리는 길거리를 다니면서 뭘 잘 먹는다. 내가 항상 배가 고프므로. 그런데 앉아서 먹을 시간은 없고 해서 걸어 다니면서 간단하게 김밥이니 떡이니 하는 걸로 끼니를 때우는 때가 많다. 이때 혼자 먹기 미안해서 제이한테도 좀 주면, 제이는 그것을 한 번도 안 먹는다고 한 적이 없다. 주는 대로 냠냠 맛있게 잘 먹으면서 나보고만 먹보 취급을 하다니! 물론, 내가 쫌 많이 먹기는 한다. 식당에서 밥 먹을 때 제이 밥을 많이 뺏어 먹기는 한다. 제이는 음식을 빨리 씹지 못하니까… 제이 한 숟갈, 나 세 숟갈… 이렇게 다정하게 같이 밥을 먹다 보면 어느새 내 그릇은 텅 비고, 제이 밥 떠먹여 주면서 “아이구 이거 많아서 다 먹겠냐” 하면서 제이 입에 들어갈 게 내 입에 들어가는 때가 종종 있다. 근데… 오늘 김밥은 두 조각 먹고 나서, 세 개째 먹으려는데… 기분이 안 좋다. 맛이 약간 간 것 같다. 벌써 초여름이라 음식이 금방 상하는 모양이다. 게다가 지하상가에서 파는 김밥이란 게 호일에 싸놓으면 어제 걸 팔아도 알 수가 없으니까… 이렇게 밖에서 아무거나 대충 먹으면서 끼니를 때우면 체력이 떨어지니 집에서 아침 꼭 챙겨 먹고 도시락으로 주먹밥이라도 싸가지고 다니자 마음은 먹지만, 맨날 아침마다 허겁지겁 나오기 바빠서 그게 잘 안 된다.
지하상가를 통해 길을 건너서 우리는 마침내 목적지를 목전에 두게 되었다. 헥헥, 도대체 리프트를 몇 번이나 탄 거야! 환승하면서 한 번, 지하철 내려서 역 바깥으로 나오면서 두 번, 길 건너면서 두 번… 리프트 타다가 멀미하겠네! 그래도 다행히 보험회사가 있는 건물은 길 건너 골목을 들어서자 바로 있었다. 그런데 출입구가… 계단 두 칸을 올라가야 된다. 경사로가 없다. 계단 턱이 높지 않은 경우에는 휠체어를 뒤로 기울여 앞바퀴를 들어서 계단 턱에 올라설 수 있는데, 여기는 계단이 두 개인 데다가 계단 하나의 턱이 벽돌 두께만 해서 휠체어를 기울여서 올라가기가 힘들다. 어쩌지? 나는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 관리인에게 묻는다. 관리인은 출입구 왼쪽, 주차장을 통해 들어가는 쪽문을 알려준다. 거기는 문턱이 낮아서 휠체어를 기울여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휴우… 겨우 다 왔네! 사무실은 거의 비어 있었다. 다들 출장을 나간 모양이다. 사무실을 지키는 설계사 한 분이 차를 내오며 상담을 해주었다. 지난주에 갔던 다른 보험회사들은 1급 장애인이라고 하니 아예 손을 내저었다. 여기는 그렇지는 않았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거부하는 일은 없고 방문심사 후 가입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설계사는 제이의 생년월일, 주소, 한 달 수입 등등을 묻더니 건강보험과 암보험 두 개 합해서 한 달에 5~7만 원 정도 돈을 넣는 걸로 해서 보험가입 신청을 해보겠다고 한다. 그런데 담당의사의 소견서를 제출할 것, 그리고 지금 제이의 수입이 불안정하니 부모님 명의로 가입 신청을 해보겠다고 한다. 그렇게 해도 가입이 꼭 되는 건 아니다. 신청을 해보겠지만 안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확인해야 하는 것은 이 보험회사가 장애인에게 개방되어 있느냐 여부이다. 그런데 이게 참 애매하다. 본인 이름으로 가입을 할 수 없고, 의사 소견서까지 내야 한다면 이건 거의 안 된다는 말인데… 그렇다고 그게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한 게 아니니… 여기서 조사를 마칠 수도 없고, 끝까지 알아보려니 시간도 들고 돈도 든다. 아니, 왜 의사 소견서가 필요하다는 거야? 장애 판정이 지금의 신체 상황을 말해 주고 있는데! 제이는 씩씩거렸다. 게다가 우리의 관심사는 보험 가입이 아니다. 물방울 다이아… 물방울 다이아… 빨리 조사 끝내고 아르바이트비를 받는 것. 행사 기간 끝나기 전에 얼른 새로 생긴 미용실에 가서 그 신비의 물방울 다이아 파마를 해보는 것이다. 역시 돈 버는 일은 쉽지 않다. 앞의 11건의 시설조사를 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는데 마지막에 이렇게 발목이 잡힐 줄이야!
지도에 17분 걸린다는 거리를 한 시간 반이나 걸려서, 리프트를 다섯 번이나 타고 갔는데 일을 제대로 끝내지 못했으니 제이도 나도 기진맥진. 다시 배가 고프다. 하지만 점심 먹을 시간이 없다. 예상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바쁘게 복지 일자리 일터로 가야 한다. 다시 충무로역의 70개의 계단을, 4호선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야 하므로, 이번에는 내려가야 한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저기 까마득한 70개의 계단 아래에서 천천히 기계 연주음을 울리면서 올라오고 있는 리프트를 기다리면서… 고개가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어져서 언제나 꿈을 꾸는 표정의 제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이렇게 중얼거린다.
“그게… 물방울 다이아 파마 말이야… 그거 하면 머리 묶으면 안 되고 풀어 다녀야겠지? 난 묶어 다니는 게 편한데… 하지만 전부터 사람들이 파마머리를 왜 묶어 다니냐 하더라구. 아, 내가 이마가 안 이쁘면 모르겠는데, 이마가 이렇게 예쁜데, 왜 머리를 풀어서 가리고 다녀? 근데… 물방울 다이아 파마는 웨이브가 멋지다니까… 이마 좀 가려도 풀어 다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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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이님은 물방울 다이아파마 하셨나요. 찰랑찰랑 함초롬한 웨이브 머리를 풀고 다니시는지....5월 마지막 날 참 궁금합니다.
가로다님 안녕하세요~!
다음번 활보에.... 나오지 않을까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이것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물어봐 드리겠습니다. ^^
장애인 보험거부는 정말 문제인데...ㅠㅠ 아무런 대책이 없는 정부나 금융감독원!
나도 물방울 다이아 파마 해보고 싶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