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의 아름다움은 없다!_3 ―제니 새빌과 베스 디토 사이
이 언니를 만나다
2012/06/01 09:00
더 이상의 아름다움은 없다!_3
―제니 새빌과 베스 디토 사이
두 주 동안 저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가부장적 미학 체계에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아름다움 자체에 대한 관심을 없애려고 했던 68년도 미국의 페미니스트 언니들과 그에 대항해 미모 자체를 권력으로 만들었던 마돈나 언니와 트로피 와이프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 양자의 간격은 무척 큽니다. 극과 극이라고나 할까요? 안티미스아메리카대회를 개최했던 언니들은 성별을 없애고, 섹슈얼리티를 삭제하는 방식으로 가부장제적 미를 비판했고, 마돈나와 트로피 와이프들은 오히려 성별의 차이를 더욱 강조하고, 섹슈얼리티를 욕망의 대상으로 만듦으로써 가부장제에 나름 대항했었죠.
두 가지 전략이 의미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역시 그 의미만큼이나 부작용도 꽤 되었습니다. 말씀드렸듯 외모에 관심을 두지 않는 여성주의자들은 좀더 꾸미고 싶은 평범한 여성들을 배척하는 기준이 될 수 있기도 했고, 아름다움을 탈성별화하고 탈섹슈얼리티화함으로써 오히려 여성의 남성화 전략으로 수렴되기도 했습니다. 마돈나와 트로피 와이프는 욕망의 대상인 여성의 몸을 권력의 대상으로 만들면서 시선의 정치학을 정복하긴 했으나, 결국 가부장제가 원하는 미를 갖지 못하는 여성들을 다시 다이어트와 성형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딜레마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68년도 페미니스트 언니들과 80년대 이후 마돈나 언니가 보여 준 이 방향 속에서 어떤 선택이 과연 제3의 길(?)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도 가게에서 산 옷을 입고 나가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이 딜레마가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다만 여성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규정하는 여러 시도들을 살펴보다 보면 내가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사이즈, 누구나 똑같아 보이는 화장법, 머리 모양 이런 것들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요? 전 그래서 오늘 영국의 화가 제니 새빌(Jenny Saville)과 팝음악의 스타 베스 디토(Beth Ditto)를 만나 보려고 합니다.

영국의 사치 갤러리가 사랑하는 화가이자, 현대 미술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언니 제니 새빌. 이 언니는 독특한 시선으로 여성의 누드를 그려 왔습니다. 이미 그녀는 데뷔 때부터 여성의 누드를 그렸고, 지금도 기형적인 여성의 몸들을 그리며 페미니스트 화가로 자리 매김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그림은 여성의 누드이긴 하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여성의 누드는 아닙니다. 오히려 폭포수처럼 쏟아질 것 같은 비곗덩어리의 몸, 트랜스젠더의 몸, 머리가 두 개인 몸들을 그리죠. 그녀의 그림 속에 담긴 여성들은 오히려 '아름다움'보다 '추함'에 가깝습니다.
제니 새빌의 그림은 처음 영국에서 공개되었을 때, 평론가들과 감상자들에게 충격을 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충격은 여성의 누드가 기존에 그려졌던 고전주의적 관능미 대신 '추함'을 정면에 내세웠기 때문이었지요. 그 추함은 여러 면으로 나타나지만, 그녀의 그림은 언제나 가부장적 아름다움에 전혀 따르지 않는 그림들이었습니다. 전시회가 열릴 때마다 사람들은 몸이 가진 기괴함과 그로테스크함을 경험했고, 아름답지 않은 여성의 몸이 주는 충격은 매번 화제가 되었습니다. 추함과 그로테스크함으로 대표되는, 그녀가 그린 누드는 몸이 갖는 물질성을 드러내며, 가부장적 미적 규범이 얼마나 공고하며 또 이미지만으로 충격을 받을 만큼 얼마나 허약한지를 드러냅니다.

이와 관련하여 베스 디토 언니도 한 번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돈나를 잇는 새로운 팝계의 아이콘 베스 디토. 이 언니는 그야말로 몸 그 자체가 그!로!테!스!크입니다. 다이어트, 성형 수술 따위는 이 언니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 "알칸소에서 온 레즈비언 뚱땡이"라고 칭하질 않나,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입고 싶은 대로 입자"며 무대를 뛰어다닙니다. 게다가 빅사이즈의 옷을 팔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 브랜드에서 공연하는 것을 거부하기도 했지요. 그렇습니다. 이 언니 세상에 몸을 맞추기보다 내 몸에 세상을 맞춰야 한다며 신나게 살아갑니다. (심지어 겨드랑이 털도 깎지 않고 데오도란트도 뿌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펑크 음악은 좀 냄새가 나야 한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네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10킬로그램 늘었다고 빌보드에서 높은 순위도 얻지 못하는 미모 절대주의가 판을 치는 팝음악계에서 100킬로그램 가까운 몸으로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그녀는 모든 이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마돈나처럼 운동과 식이로 다져진 멋진 몸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녀는 타인의 시선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몸을 드러냅니다. 덕분에 그녀는 노래보다 몸이 갖는 기괴함으로 먼저 명성을 떨쳤죠. 가부장적 판타지와 거리가 먼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에 숱한 균열을 만들며, 성별이 갖는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죠.
이런 그로테스크적인 이미지와 추함은 가부장제가 말하는 정상화된 여성 신체를 저항적인 신체로 탈바꿈 시킵니다. 오히려 공포스럽고 기괴한 추함이 사실 여성 몸 위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그러면서 동시에 가부장적 아름다움이 원하는 여성의 아름다움이 낯선 것인지도 여성의 몸을 통해 보여 줍니다. 정상화된 신체에서 벗어나 기괴한 몸으로서의 진입(먹고 싶은 대로 먹고, 입고 싶은 대로 개의치 않고 입는)은 성별 정체성에 의문을 던지고,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저는 베스 디토와 제니 새빌이 만들어 내는 이 균열, 이 추함과 그로테스크적인 몸과 이미지들이 어쩌면 우리에게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끊임없이 규범에서 이탈하는 여성의 몸, 여성의 노출, 남성적 기준에서 아름답지 않은 것들을 계속 만들어 내고, 균열을 가하는 것, 이런 것들이야말로 아름다움이 갖는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제니 새빌이나 베스 디토처럼 가부장적 질서에서 이탈하면서 만들어 내는 이미지와 노출이 더 이상의 남성 권력의 승인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드러나고 움직이게 하는 것, 허약한 결론이긴 하나 이런 것들이 남성적 미에 갇힌 여성들을 해방시킬 수 있진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제니 새빌과 베스 디토 사이
두 주 동안 저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가부장적 미학 체계에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아름다움 자체에 대한 관심을 없애려고 했던 68년도 미국의 페미니스트 언니들과 그에 대항해 미모 자체를 권력으로 만들었던 마돈나 언니와 트로피 와이프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 양자의 간격은 무척 큽니다. 극과 극이라고나 할까요? 안티미스아메리카대회를 개최했던 언니들은 성별을 없애고, 섹슈얼리티를 삭제하는 방식으로 가부장제적 미를 비판했고, 마돈나와 트로피 와이프들은 오히려 성별의 차이를 더욱 강조하고, 섹슈얼리티를 욕망의 대상으로 만듦으로써 가부장제에 나름 대항했었죠.
두 가지 전략이 의미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역시 그 의미만큼이나 부작용도 꽤 되었습니다. 말씀드렸듯 외모에 관심을 두지 않는 여성주의자들은 좀더 꾸미고 싶은 평범한 여성들을 배척하는 기준이 될 수 있기도 했고, 아름다움을 탈성별화하고 탈섹슈얼리티화함으로써 오히려 여성의 남성화 전략으로 수렴되기도 했습니다. 마돈나와 트로피 와이프는 욕망의 대상인 여성의 몸을 권력의 대상으로 만들면서 시선의 정치학을 정복하긴 했으나, 결국 가부장제가 원하는 미를 갖지 못하는 여성들을 다시 다이어트와 성형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딜레마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68년도 페미니스트 언니들과 80년대 이후 마돈나 언니가 보여 준 이 방향 속에서 어떤 선택이 과연 제3의 길(?)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도 가게에서 산 옷을 입고 나가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이 딜레마가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다만 여성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규정하는 여러 시도들을 살펴보다 보면 내가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사이즈, 누구나 똑같아 보이는 화장법, 머리 모양 이런 것들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요? 전 그래서 오늘 영국의 화가 제니 새빌(Jenny Saville)과 팝음악의 스타 베스 디토(Beth Ditto)를 만나 보려고 합니다.

제니 새빌_「Prop」(지탱하기):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여성의 몸. 그와는 반대로 평안해 보이는 여성의 표정. 제니 새빌은 이미지 속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은 새롭게 규정됩니다.
영국의 사치 갤러리가 사랑하는 화가이자, 현대 미술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언니 제니 새빌. 이 언니는 독특한 시선으로 여성의 누드를 그려 왔습니다. 이미 그녀는 데뷔 때부터 여성의 누드를 그렸고, 지금도 기형적인 여성의 몸들을 그리며 페미니스트 화가로 자리 매김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그림은 여성의 누드이긴 하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여성의 누드는 아닙니다. 오히려 폭포수처럼 쏟아질 것 같은 비곗덩어리의 몸, 트랜스젠더의 몸, 머리가 두 개인 몸들을 그리죠. 그녀의 그림 속에 담긴 여성들은 오히려 '아름다움'보다 '추함'에 가깝습니다.
제니 새빌의 그림은 처음 영국에서 공개되었을 때, 평론가들과 감상자들에게 충격을 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충격은 여성의 누드가 기존에 그려졌던 고전주의적 관능미 대신 '추함'을 정면에 내세웠기 때문이었지요. 그 추함은 여러 면으로 나타나지만, 그녀의 그림은 언제나 가부장적 아름다움에 전혀 따르지 않는 그림들이었습니다. 전시회가 열릴 때마다 사람들은 몸이 가진 기괴함과 그로테스크함을 경험했고, 아름답지 않은 여성의 몸이 주는 충격은 매번 화제가 되었습니다. 추함과 그로테스크함으로 대표되는, 그녀가 그린 누드는 몸이 갖는 물질성을 드러내며, 가부장적 미적 규범이 얼마나 공고하며 또 이미지만으로 충격을 받을 만큼 얼마나 허약한지를 드러냅니다.

베스 디토: 뚱뚱한 게 뭐가 어때서?라며 되묻는 베스 디토 언니. 언니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누군가에게 승인을 받을 생각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베스 디토 언니도 한 번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돈나를 잇는 새로운 팝계의 아이콘 베스 디토. 이 언니는 그야말로 몸 그 자체가 그!로!테!스!크입니다. 다이어트, 성형 수술 따위는 이 언니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 "알칸소에서 온 레즈비언 뚱땡이"라고 칭하질 않나,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입고 싶은 대로 입자"며 무대를 뛰어다닙니다. 게다가 빅사이즈의 옷을 팔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 브랜드에서 공연하는 것을 거부하기도 했지요. 그렇습니다. 이 언니 세상에 몸을 맞추기보다 내 몸에 세상을 맞춰야 한다며 신나게 살아갑니다. (심지어 겨드랑이 털도 깎지 않고 데오도란트도 뿌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펑크 음악은 좀 냄새가 나야 한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네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10킬로그램 늘었다고 빌보드에서 높은 순위도 얻지 못하는 미모 절대주의가 판을 치는 팝음악계에서 100킬로그램 가까운 몸으로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그녀는 모든 이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마돈나처럼 운동과 식이로 다져진 멋진 몸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녀는 타인의 시선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몸을 드러냅니다. 덕분에 그녀는 노래보다 몸이 갖는 기괴함으로 먼저 명성을 떨쳤죠. 가부장적 판타지와 거리가 먼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에 숱한 균열을 만들며, 성별이 갖는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죠.
이런 그로테스크적인 이미지와 추함은 가부장제가 말하는 정상화된 여성 신체를 저항적인 신체로 탈바꿈 시킵니다. 오히려 공포스럽고 기괴한 추함이 사실 여성 몸 위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그러면서 동시에 가부장적 아름다움이 원하는 여성의 아름다움이 낯선 것인지도 여성의 몸을 통해 보여 줍니다. 정상화된 신체에서 벗어나 기괴한 몸으로서의 진입(먹고 싶은 대로 먹고, 입고 싶은 대로 개의치 않고 입는)은 성별 정체성에 의문을 던지고,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저는 베스 디토와 제니 새빌이 만들어 내는 이 균열, 이 추함과 그로테스크적인 몸과 이미지들이 어쩌면 우리에게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끊임없이 규범에서 이탈하는 여성의 몸, 여성의 노출, 남성적 기준에서 아름답지 않은 것들을 계속 만들어 내고, 균열을 가하는 것, 이런 것들이야말로 아름다움이 갖는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제니 새빌이나 베스 디토처럼 가부장적 질서에서 이탈하면서 만들어 내는 이미지와 노출이 더 이상의 남성 권력의 승인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드러나고 움직이게 하는 것, 허약한 결론이긴 하나 이런 것들이 남성적 미에 갇힌 여성들을 해방시킬 수 있진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편집부 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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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에 가게 되면 탕 속에 가만히 앉아
수많은 할머니, 어머니들의 굴곡진 몸들을 바라보게 되는 요즘이예요.
어느 한 곳 매끈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비틀어지고 굴곡진 저 몸들이
기나긴 세월 속에서 수많은 어린 것들을 품어왔구나 하는 생각에
'저것이 진짜 아름다움이다'하고 속으로 되뇌이게 된답니다.
아름다움으로 여겨지던 것들에 물음표를 던지고,
아름다움이라 불리워지지 않던 것들에 숨겨진
참된 아름다움을 발견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비단 여성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타인에 의해 규정된 아름다움에서 해방되는 날을 기다려봅니다.
강가에 나무님 반갑습니다.
말씀해주신 댓글의 내용도 참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