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뒤로 치맛자락 휘날리며

정경미

매일 아침 8시에 에쓰에게 간다. 똑똑. 방문을 열면 침대에 누워 있는 에쓰가 눈을 반짝 뜨고 탁상시계를 쳐다본다. 3분 늦었어. 밤새 문을 닫아 놓은 방안 공기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에쓰가 오줌! 이라고 소리친다. 척추측만증이 있어서 척추 뼈가 장을 눌러서인지 에쓰는 오줌이 자주 마렵다. 그런데 밤에는 활보가 없으니 아침에 내가 올 때까지 7~8시간을 참고 있자니 오줌이 급한 것이다.

나는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방문을 열고 나가 거실 베란다 창문도 연다. 주방 싱크대 위에 쌓인 그릇들을 치운다. 에쓰가 오줌! 이라고 한 번 더 소리친다. 나는 침대 주변을 본다. 침대 옆에 둔 휠체어 밧데리 코드를 뺀다. 침대 주변에는 컴퓨터 마우스, 헤드폰, 안경, 물건 산 영수증 등이 떨어져 있다. 에쓰는 밤에 음악을 듣고, 방송 수업도 듣고, 가계부도 쓰고 하다가 휠체어에서 침대로 몸을 옮겨 잠이 드는데, 이때 영수증 같은 게 휙 날아가도 “아침에 언니 오면 줍겠지” 하면서 에쓰는 그냥 자버린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안경을 주워 천천히 안경알을 닦으면서 아참, 하면서 내 안경도 벗어 알을 닦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줌을 누기 위해서는 에쓰가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까지 가서 변기 위에 앉아야 한다. 나는 먼저, 에쓰의 등을 받쳐서 침대에서 일으켜 앉힌다. 그러면 에쓰가 엉덩이 걸음으로 침대 옆에 있는 휠체어 쪽으로 몸을 움직인다. 휠체어 의자에 엉덩이를 살짝 걸치는 위치까지 가면 내가 에쓰를 안아서 휠체어에 반듯하게 앉힌다. 그러면 에쓰가 휠체어 운전을 해서 화장실까지 간다.

휠체어에서 변기로 몸을 옮기기까지는 약간의 세부 과정이 있다. 가장 간단한 건 내가 안아서 한 번에 옮기는 거지만, 내가 무슨 항우 장사도 아니고, 하루에 몇 번씩이나 사람을 번쩍 들었다 놨다 한단 말인가. 에쓰가 조금 더 움직이기로 한다. 휠체어를 변기 옆에 최대한 바짝 붙이고, 휠체어 좌석에 무릎으로 선다. 이때 내가 옷을 내린다. 그 다음, 에쓰가 무릎 걸음으로 변기 쪽으로 몸을 움직인다. 한쪽 무릎을 변기 위에 얹는다. 이른바 양다리 걸치기! 한쪽 무릎은 휠체어에, 다른 한쪽 무릎은 변기를 딛고 선 에쓰를 내가 살짝 안아서 변기에 앉힌다.

그런데 오줌을 누고 난 다음이 문제다. 휠체어에서 무릎 서기는 쉬운데 변기 위에서는 그게 힘들다. 밑이 꺼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변기 옆에 선 내 몸이 지지대가 된다. 에쓰가 나를 붙잡고 한쪽 발로 잠시 몸을 지탱해 선다. 이때 나는 한 손으로는 에쓰를 붙잡아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재빨리 옷을 올린다. 그리고 에쓰를 안아서 붙잡은 채 휠체어 쪽으로 몸을 돌린다. 그러면 에쓰가 휠체어 위에 몸을 던져 앉는다.

화장실에서 나와서, 에쓰는 “밥 줘!”라고 외친다. 이때 밥은 rice가 아니다. coffee다. 맥심 회사에서 상 줘야 하지 않을까? 에쓰는 아침에 눈뜨자마자 커피 한 잔을 마셔야 잠이 깬다. 그리고 하루 종일 휠체어에 앉아 있다 보면 머리가 띵해진다면서, 이때 커피를 마시면 정신이 들고 기운도 난다면서, 하루에 보통 커피를 대여섯 잔씩 마신다. 이십 년 동안 이렇게 열심히 커피 마신 사람에게 커피 회사에서 상 줘야 하지 않을까?

커피 둘. 설탕 하나. 프림 하나. 물은 잔의  1/10 정도 되게 조금만 붓고, 작은 빨대를 꽂아서 두 무릎 사이에 끼워주면, 에쓰는 무릎으로 잔을 쥐고 커피를 마신다. 외출을 나가서도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자판기 커피는 ‘간이 안 맞다’. 너무 달고 걸쭉하고 양도 많다. 그래서 에쓰는 휠체어 뒤에 메고 다니는 가방에 커피를 항상 넣고 다닌다. 커피, 설탕, 프림을 작은 병에 담아서, 휴대용 커피 잔도 하나 갖고 다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제 ‘진짜’ 밥을 먹는다. 커다란 접시를 하나 꺼내서 여기에 반찬을 먹을 만큼만 담는다. 뭐 먹을까? 냉장고 문을 열어본다. 냉장고에 김치찌개 남은 게 있다. 아, 이거 데워 먹으면 되겠구나. 그리고 고구마순 들깨 무침. 이거, 며칠 된 거 같은데… 상하기 전에 빨리 먹어야겠네. 오이지, 멸치볶음을 더 꺼내서 접시에 담는다. 마지막으로 밥을 담는다. 냉동실에서 탁구공 만한 밥 한 덩이를 꺼내서 전자렌지에 돌린다.

에쓰의 밥은 소주잔 2/3컵 분량. 내가 평소 먹는 쌀 2인분이 에쓰의 일주일치 양식이다. 조그만 전기밥솥에 잡곡을 씻어 앉힌다. 밥이 다 되면 소주잔 2/3컵 분량으로 밥을 담는다. 그러면 15개 정도의 작은 밥덩이가 나온다. 이걸 플라스틱 통에 담아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끼니 때마다 하나씩 꺼내 녹여 먹는 것이다. 렌지에 40초 정도 돌리면 금방 한 밥 같은데… 이게 금세 마르고 딱딱해진다. 그러니 접시에 반찬 다 담고, 먹기 바로 직전에 밥을 데워서 담는 것이다.

에구, 이게 사람 밥이냐? 새 모이지… 하지만 콩이니 현미니 몸에 좋다는 잡곡을 다 넣은 밥이고, 야채 과일을 신경 써서 먹기 때문에 영양 섭취는 훌륭하다. 그런데 사람이 꼭 체력 유지를 위해서만 밥을 먹나? 먹는 일 자체가 즐거운 것이다. 그런데 에쓰는 먹는 걸 별로 즐기지 않는다. 그게 밥 한 끼 안 먹으면 죽는 줄 아는 나로서는 가장 이해가 안 되고 또 신기한 점이다.

시설에 있을 때 에쓰는 열흘 동안 단식 투쟁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시설 공사 하면서 미관상 안 좋다고 방에 있던 냉장고를 바깥에 내놓아 버렸다. “냉장고를 돌려달라! 물 한 모금 마시는데 복도 저쪽까지 가야 하냐. 미관이 중요하냐, 원생들의 편의가 중요하냐!” 항의하면서 열흘 동안이나 굶었단다. 요즘도 바쁜 일 있으면 한두 끼 굶는 건 예사다. 그리고 에쓰는 고기를 못 먹는다. 모르고 김밥에 들어가 있는 햄 한 조각만 먹어도, 가려워 죽겠다고 벽에다 온몸을 긁는다.

대신, 김치 없으면 밥을 못 먹는다. 밥만 못 먹는 게 아니라 빵도 못 먹는다. 카스테라 먹을 때도 김치 얹어서 먹는다. 열흘 동안 단식 투쟁을 하는 꿋꿋한 에쓰가 만약 일제시대 때 살았다면 독립 투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제의 고문 끝에 투항을 해야 했다면 그것은 반드시 김치 때문일 것이다. “너, 그럼 김치 안 준다?”라고 하면 아마도 에쓰는 동지고 조국이고 모조리 팔아넘겼을 것이다.

밥 먹고 나서 욕실에 가서 세수를 한다. 洗手. 손을 씻는다는 뜻이다. 손 대신 발을 쓰는 에쓰는 발을 씻는다. 물론, 얼굴을 먼저 씻는다. 그리고 발을 씻는다. 에쓰의 발톱에 보라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다. 오후 활보가 발라줬다고 한다. 에쓰에게는 나 말고도 두 명의 활보가 더 있다. 오후 활보와 저녁 활보. 에쓰는 하루에 열두 시간 정도 활보와 함께 있다. 자는 시간 빼고는 거의 하루 종일 남하고 같이 있어야 되는 게 피곤하지 않을까? 먹은 게 고스란히 똥으로 드러나는 생활. 사생활이 없는 삶이 숨 막히지 않을까? 손을 못 쓰니까 몰래 나쁜 짓도 못 한다. 아니, 가끔, 에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흔들리는 팔 때문에, 자신의 손톱에 얼굴이 긁힐 때가 있기는 하다.

나는 사람의 발을 유심히 본 적이 없다. 내 발도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른다. 그런데 매일 아침 에쓰의 발을 씻으면서… 발에도 표정이 있다는 걸 알았다. 세면대 위에 처억 걸쳐 놓은 에쓰의 발은… 세상에 아무 근심 없는… 동자승의 머리통처럼 해맑다.

에쓰의 발은 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그 중에 가장 최근의 일은… 지난 스승의 날 때, 에쓰는 학교 선생님들께 감사의 선물을 준비했다. 정성껏 포장을 하고, 종이로 꽃도 만들어 붙이고 해서 드렸는데, 교수님 중에 한 분이 “아이구 고맙네” 하면서 에쓰한테 손을 내밀면서 악수를 청하더란다. 순간, 에쓰는 당황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장난꾸러기 같은 발가락을 꼼지락 꼼지락 하면서 발을 내밀었다는 이야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씻고 나왔으니 이제 옷을 입을 차례. 오늘 에쓰는 오전에 교회 가서 성경 공부하고, 국립재활원 가서 물리치료 받고, 저녁에는 학교에도 다녀와야 한다. 무슨 옷을 입고 나갈까?

에쓰는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연금 합해서 한 달에 60~70만 원으로 생활한다. 그 중에 50만 원 넘게 저축을 한다. 지금은 장애인 자립생활센터에서 지원하는 체험홈에서 살고 있으므로 주거비가 안 들지만 곧 자립을 해야 하므로 방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러면 한 달에 15~20만 원으로 생활을 한다는 얘긴데… 에쓰의 옷장 문을 열면… 이건 무슨 연예인 옷장 같다. 옷걸이에 철마다 다양한 옷들이 걸려 있고, 옷장 문 안쪽에는 온갖 종류의 머리핀, 벨트, 장식들이 진열되어 있다. 한 달 생활비 15~20만 원으로 어떻게 이런 생활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얻어 쓰는 건 항상 나다. 쌀이 떨어졌어… 그러면 에쓰가 라면을 두 개 준다. 설날 선물이라며 칫솔도 두 개 줬다. 활보 결재 시간을 1시간이라도 더 채워주기 위해 일 끝나고 전철역까지 따라온 적도 있다. 그리고 “지하철 같이 타줄까?”라고 한다. 에쓰에게는 무임 교통카드가 있어 동행하면 나도 공짜로 지하철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언니, 이 옷 어때?” 에쓰는 오늘 새로 산 원피스를 입고 나가기로 한다. 집시 스타일의 나풀거리는 치마다. 소매 없는 옷이라 좀 야하지 않을까? 아냐 어깨 장식이 덮어주니까 괜찮아. 에쓰는 발랄한 스타일의 옷을 좋아한다. 어릴 때 집에서, 또 시설에서 살 때 입고 벗기 편하라고 맨날 우중충한 색깔의 고무줄 바지만 입으라고 해서 예쁜 옷 입는 게 소원이었단다. 시설에서 나온 요즘은, 비싼 옷은 못 사도 옥션 같은 데서 행사 상품으로 내놓는 싸고 예쁜 옷을 마음껏 골라 입는다. 혹은 아름다운 가게에 재활용 옷들을 열심히 뒤진다. 머리도 길러서 모임 성격에 따라 핀을 다르게 꽂고 나간다.

에쓰는 몸이 오른쪽으로 약간 비틀어져 있다. 오른팔은 밑으로, 왼팔은 위로 뻗은 채 근육이 굳어 있기 때문에 옷을 입기가 까다롭다. 손의 근육이 누가 옆에서 건드리면 더 경직되기 때문에 아무 얘기나 막 해서 시끄럽게 떠들어서 손을 의식하지 않도록 한다. 정신이 딴 데 팔려서 순간 긴장이 풀어진 손을 잽싸게 팔소매에 끼워야 한다. 오른팔을 먼저 끼고, 머리통을 옷 속에 집어넣었다가 빼고, 그리고 왼팔을 소매에서 뺀다. 목이 좁은 옷의 경우, 어느 게 팔 소매고 어느 게 목 소매인지 헷갈려서 한참 낑낑거리며 옷을 입었는데… 입고 보니 팔소매에 목을 넣은 거라서 “이 산이 아닌개비여” 하면서 황급히 머리통을 옷에서 다시 뺀 적도 있다. 이렇게 머리통과 두 팔을 끼우면, 그 다음에는 휠체어에 앉은 자리에서 엉덩이를 살짝 들어서 치마를 다리 쪽으로 끌어내린다. 그리고 치마 안에 레깅스를 신는다.

레깅스 혹은 쫄바지를 치마 안에 꼭 입어야 된다. 예쁜 치마를 입고 얌전한 아가씨로 보이지만 에쓰는 언제 괴물로 돌변할지 모른다. 치마를 입은 채로 에쓰는 불시에 다리를 번쩍 쳐들어 엘리베이터 단추를 누르기 때문이다. 말하다가도 흥분하면 자기도 모르게 두 다리를 번쩍 쳐들고 “그기 아이고예”라고 하면서 손짓 대신 발짓을 섞어서 말한다. 이때 훌러덩 치마가 뒤집히는 순간을 대비해서 겉옷을 속옷처럼 갖추어 입어야 하는 것이다.

옷 다 입고, 머리 빗고, 발목에 집 열쇠 걸고, 휠체어의 안전벨트를 매면 외출 준비 끝이다. 이로써 두 시간 여의 아침 활보가 마무리가 된다. 오늘 세 군데나 다녀오려면 바쁘겠어. 안전 제일! 운전 조심하고 내일 보자. 내가 이렇게 인사를 한다. 그러면 자칭 ‘베스트 드라이버’ 에쓰는 안녕 내일 봐… 하면서 나보다 먼저 현관문을 나가서 씽 하고 휠체어를 몰고 전철역을 향해 달린다. 휠체어 뒤로 치맛자락 휘날리면서 표표히 사라지는 에쓰는 물론, 이런 마무리 멘트를 잊지 않는다.

“이 원피스 6900원 주고 샀다는 거 누가 믿겠어? 이상하게 내가 입으면 싸구려 옷도 태가 난다고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활·보 활보(闊步)" 카테고리 글 모음
2012/06/07 09:00 2012/06/07 09:00
RSS를 구독하시면 더욱 편하게 그린비의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 ]

trackback url :: http://greenbee.co.kr/blog/trackback/1769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