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활동


싸우는 활동
정경미


에쓰랑 내가 같이 하는 활동 중에 가장 주된 활동은 ‘싸우는 활동’인 것 같다. 오늘도 싸웠다. 화장실에 똥을 누러 들어갔는데 변기 옆에 세워둔 휠체어 등받이에 머리빗이 삐죽 꽂혀 있다. 어제 저녁 활보가 머리 빗고 빗을 제자리에 갖다 두는 걸 깜빡 잊은 모양이다. 이게 왜 여기 있지? 변기에 앉아 있던 에쓰를 휠체어로 안아 옮기면서 나는 팔에 걸리적거리는 머리빗을 휠체어에서 빼서 방안으로 던진다.

- 물건을 왜 집어 던져?
- 걸리적거리니까.
- 내 물건을 집어 던지는 건 나를 집어던지는 것과 같아.
- 그럼, 똥 닦다 말고… 아이구 빗님 저리 납시지요 하면서 고이 모셔야 돼?
- 그 빗이 언니한테 뭐라 그랬다고, 그걸 꼭 지금 치워야 돼?

이렇게 말다툼이 시작되면 옛날 고릿적 불만까지 다 튀어나온다.

- 작년 여름에 언니가, 시키지도 않은 청소 하느라 약속 시간 한 시간 반이나 늦었거든?
- 설마 내가 청소를 한 시간 반 동안이나 했겠어? 같이 하다 일이 그렇게 된 걸 왜 내 잘못으로 뒤집어씌워? 글고, 내가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이냐?
- 당연하지! 활보하는 동안 언니는 내 손이고 내 발이거든?
- 지멋대로 부려먹을라고만 하면 자기 손발도 말을 안 듣거든?

이러다 보면 활보 끝날 시간이 다 돼서, 아직 둘 다 분이 덜 풀려 씩씩거리는 채로 인사도 못 하고 헤어지는 날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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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가까이 우리는 매일 아침 만났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크리스마스 날 아침이나 설날 아침에도. 명절날이라고 해서 오줌이 안 마려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허겁지겁 달려가다 보니 양말을 짝짝이로 신거나 셔츠를 뒤집어 입고 가는 날도 있다.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와 이렇게 가까이에서 몸 섞으며 산 적이 없다. 언제나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예의와 격식 뒤에서 만났을 뿐이다. 그런데 에쓰를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을 기억한다. 에쓰가 처음 보는 내 앞에서 “오줌!”하면서 대뜸 엉덩이를 훌렁 까서 내밀었을 때, 나는 눈앞의 어떤 휘장 같은 것이 확 걷히는 느낌이었다. 혹은, 화장실에서 옷을 올리기 위해 내가 잠시 에쓰를 안아 버티면서 한 손으로 에쓰의 몸을 붙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금방 고꾸라질 것 같은 에쓰의 무릎이 꺾이기 전에 재빨리 옷을 올리려고 낑낑거리는 순간, 진땀 나는 내 어깨 위에 얼굴을 걸치고 거기에 온몸의 무게를 실은 에쓰를 통해 지그시 전해지는 운명의 무게 같은 것.

오늘은 병원에 물리치료 받으러 가는 날이다. 에쓰는 척추측만증이 있다. 척추 뼈가 휘고 비틀리는 병이다. 그래서 상체가 오른쪽으로 약간 휘어 있다. 그리고 척추 뼈에 눌려 골반이 늘 쑤시고, 골반에서 무릎까지 근육이 당긴다. 뇌병변 장애에다가 척추측만증까지 있으니 에쓰는 그야말로 숨 쉬는 것도 고달프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하라고 한다. 하지만 수술을 하려면 돈도 많이 들고, 체력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옆에서 마음을 다해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 가난하고, 몸도 약하고, 가족도 없는 에쓰로서는 엄두가 안 난다. 게다가 수술을 해도 척추 뼈 휜 걸 근본적으로 어떻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상태의 악화를 막을 수 있을 뿐이라니… 에쓰는 수술을 받는 대신 매일 물리치료를 받는 것으로 자기 몸을 돌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근 10년 동안 에쓰는 매일 물리치료를 받아왔다.

병원은 동네에 있어서 지하철 안 타고 걸어가면 된다. 에쓰의 휠체어 속도로는 10분, 내 걸음으로는 15분쯤 걸린다. 이 10분과 15분 차이가 문제다. 성질 급한 에쓰가 내 걸음에 맞추어 휠체어를 천천히 운전할 리가 없지 않은가. 우리가 같이 가려면 내가 휠체어 뒤에서 뛰어야 한다. 게다가 에쓰는 인도로 안 다니고 차도로 다닌다. 인도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휠체어를 빨리 몰고 갈 수가 없고, 길바닥에 깔린 보도블럭 울퉁불퉁한 것 때문에 휠체어가 흔들리면 안 그래도 아픈 골반 뼈가 더욱 쑤시는 것이다. 그런데 에쓰는 휠체어에 부딪쳐 ‘사람들 다칠까봐’ 인도로 안 다닌다고 한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서! 그러면 나는… 차도로 다니다 휠체어가 차에 부딪치는 건 괜찮고? 제발 남 걱정 하지 말고 자기 걱정이나 하라고 한다.  실제로 에쓰는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멈춰 있는 줄 알았던 차가 갑자기 움직이는 바람에 휠체어 뒷바퀴가 완전히 날라간 적이 있다. 다행히 다치진 않았지만… 차들 사이로 요리조리 쌩쌩 휠체어를 몰고 다니는 에쓰를 보면 간이 다 졸아드는 것 같다. 그런데 그 휠체어 뒤에 내가 매달려 가야 하다니! 고요한 아침에 도심 한복판의 도로를 휠체어와 함께 달리는 활보! 게다가 그 휠체어는 방수비닐을 둘둘 말아 이고 다니는, 우스꽝스런 서커스단 이동마차 같음에랴!

헥헥, 여기는 인간의 길이 아니여, 짐승의 길이여!
좋잖아? 돈 안 들고 운동하고!

하긴, 그러고 보니 휠체어 붙잡고 도로를 달리는 내 모습이 어찌 보면 헬스클럽의 러닝머신을 달리는 고독한 러너 같기도 하다. 으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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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치료는 전기열로 통증 부위의 조직을 이완시키고 통증을 완화시키는 치료이다. 골반과 무릎 부위에 텐스를 붙이고 한 20분쯤 있다가, 젤 같은 걸 통증 부위에 바르고 초음파 봉을 문지르는 치료를 또 받는다. 이 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잠시 자유의 몸이 된다. 우는 애 누가 받아주는 기분이랄까? 에쓰가 전기열치료를 받으면서 물리치료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잠깐 나에게 주어진 자유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서 나는 허둥거린다. 가방에서 재빨리 아무 책이나 꺼낸다. 그리고 조그맣게 소리내어 읽는다. 뜻을 생각할 새도 없이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라 하면서 무조건 읽는다. 이러면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 하겠지? 하지만 해방의 기쁨도 잠시. 물리치료를 받고 있던 에쓰가 나를 부른다.

- 언니, 껌 줘.
- 갑자기 웬 껌?
- 커피 마시고 싶은데… 달라고 하면 언니 화낼 거잖아…
"활·보 활보(闊步)" 카테고리 글 모음
2012/06/14 09:00 2012/06/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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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놈리 2012/06/26 11:39

    재밌어요!

    • 그린비 2012/06/26 11:47

      감사합니다~!

  2. 방문자 2012/10/16 00:32

    글을 재밌게 잘 쓰세요! 이럴 시간 없는데 우연히 들렀다 다 읽고 말았어요;ㅅ;
    회사도 번창하고 앞으로도 재밌는 글이 계속 이어지길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