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이후 25년, 수많은 찬사와 논란을 불러일으킨 문제작을 다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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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서발턴 개념의 역사에 관한 성찰들』

시리즈명: 프리즘 총서 011
로절린드 C. 모리스 엮음,  태혜숙 옮김
인문 철학 | 신국판(152×224mm) | 544쪽 | 30,000원
2013년 4월 30일 발행 | ISBN: 978-89-7682-404-2 93100

1988년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글을 발표해 전 세계 지성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를 기념하고 다시 읽자는 취지로 구상되었다. 다양한 영역의 학자 7명이 참여했으며,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이 글 이후 스피박이 어떤 지적 궤적을 밟아 왔는지, 스피박의 사유가 동시대의 현상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밝혀 준다. 또한 이 책은 이 연구자들에 대한 스피박의 ‘응답’을 수록하고 있으며, 이 글에서 스피박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감동적으로 들려준다.
스피박은 1988년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를 처음 발표했으며, 이를 수정해 1999년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에 수록했다. 이 책은 두 버전의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를 모두 수록하고 있으며, 스피박 저작을 꾸준히 번역해 온 옮긴이 태혜숙이 기존 번역을 개정해 실었다.

테리 이글턴은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의 1999년 저작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에 대한 서평에서 “탈식민주의 이론은 타자에 관한 존중을 너무나 심각하게 고민하지만, 정작 가장 직접적인 타자인 독자를 따돌리고 있다”는 비판을 가했다. 이 서평에 응답하면서 주디스 버틀러는 “스피박의 연구에 광범한 독자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숟가락으로 일일이 떠먹여 주는 것보다 우리가 이 세상을 더 근본적으로 생각하도록 북돋우는 액티비스트적 사유와 글쓰기가 더 높이 평가된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고 반박했다.

이처럼 비판적 지성계 내부에서도 극단적으로 평가가 갈릴 정도로 가야트리 스피박의 사유와 글은 논란과 논쟁을 빚어 왔다. 실제로 스피박은 쉬운 글을 쓰는 연구자가 아니며, 오히려 우리가 쉬운 글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언제나 타자와 피억압자에, 즉 ‘서발턴’(subaltern)에 주목하면서 그들이 말할 가능성과 그들의 말을 우리가 들을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렇다면 스피박은 엘리트주의자인가 대중을 위한 사상가인가? 그녀는 우리가 무엇을 듣길 기대하면서 말하고 있는 걸까?

이 모든 명성 혹은 악명의 원천이 되는 텍스트가 바로 스피박의 1988년 논문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이다. 수많은 주제를 압축해 담고 있는 이 글은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극찬도 받았고, 저항을 말하면서도 저항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비판도 받았으며, 여러 분야에서 응용되기도 했고, 터무니없는 오독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글이 페미니즘, 맑스주의, 제3세계 연구, 문학 비평 등 다양한 연구 영역에서 “이정표가 되는 기여”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스피박 자신이 매번 새로운 문제를 고심하면서도 결국에는 이 글로 되돌아갔다. 그만큼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는 스피박 자신에게도, 비판적인 지적 실천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여전히 영감을 주며 다시–읽기를 요청하는 텍스트이다.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서발턴 개념의 역사에 관한 성찰들』은 스피박의 이 텍스트를 다시 읽고 생각해 보자는 취지로 2002년 개최된 동명의 학술대회에서 시작된 책이다. 여러 갈래의 연구 분야에서 활동 중인 학자들이 학술대회를 위해 모였고, 각자의 방식으로 스피박의 텍스트에 접속했다. 이 글들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이 글이 준 충격은 무엇인지, 이 글 이후 스피박의 작업이 어떤 궤적을 그려 왔는지, 그녀의 문제의식이 어떻게 다른 분야들과 연계되고 확장될 수 있는지, 그녀가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를 밝혀 준다. 그리고 책 말미에서는 스피박 본인이 이 접속들에 ‘응답’하면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압축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들려준다.

이 책은 이렇게 스피박의 텍스트에 개입하는 7명의 연구자의 글과 함께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도 담고 있다. 스피박은 1988년에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를 처음 발표했으며, 이 글을 수정해 1999년 저작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 3장 「역사」의 일부로 재수록했다.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서발턴 개념의 역사에 관한 성찰들』은 두 버전의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를 모두 싣고 있으며, 1999년의 수정본이 1부에, 1988년의 원본이 부록에 들어 있다. 이 책의 옮긴이 태혜숙은 번역과 저술을 통해 스피박 사유를 꾸준히 한국에 소개해 온 연구자로서, 1988년의 원본과 1999년의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공역)을 번역한 바 있으며, 이 책을 위해 기존 번역을 상당 부분 개정했다. 여러 연구자들의 개입과 스피박 자신의 응답, 그리고 개정된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번역을 통해 독자들은 가야트리 스피박 사유의 여정을 새롭고도 깊이 있게 읽을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의 탄생에서 최근의 작업까지 스피박 사유의 궤적을 탐사한다

스피박은 1988년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를 발표한다. 실로 “숨을 멎게 할 정도로 광범위한” 주제들과 논지들을 담고 있는 이 글에서 스피박은 서발턴, 특히 여성으로서 서발턴이 어떻게 계속해서 침묵당하게 되는지를 드러낸다. 그녀는 ‘피억압자들은 말할 수 있다’는 푸코‧들뢰즈 등 비판적 서구 지식인의 선언이 제1세계에 한정된 경험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제3세계 서발턴들을 더 깊은 침묵 속에 빠뜨린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맑스주의의 이데올로기 개념과 자크 데리다의 해체(deconstruction)에 집중하면서, 서발턴들이 스스로를 위해 말할 수 없게 되는 역학과 억압자들에 의해 피억압자들이 동질적인 ‘타자’로 구성되는 경위에 주목할 것을 요청한다. 그 뒤 스피박은 이론적 수준에서 역사적 수준으로 이동해, 남편을 잃은 과부가 자신의 몸을 불에 던져 자살하는 인도의 사티(sati) 관습을 19세기 제국주의 영국이 폐지하는 과정에 작동한 가부장제 논리를 파헤친다. 토착 인도와 제국주의 영국 모두 동일한 가부장제 논리에 입각해 있었고, 정작 여성들의 목소리는 이 과정에서 이중으로 침묵당했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스피박은 무대를 20세기 초로 옮겨 와, 인도 비밀 독립운동 단체의 조직원이었지만 정치적 요인을 암살하라는 임무를 이행하지 못한 채 자살한 부바네스와리 바두리라는 여성의 일화를 제시한다. 이 여성은 자신의 자살이 ‘불륜’으로 인한 임신 때문이 아님을 드러내기 위해 생리 중에 자살했다. 하지만 그녀의 메시지를 당대 사람들도, 후대인들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이 사례를 통해 스피박은 “서발턴은 말할 수 없다!”고 통탄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는 다양한 영역에 지적 자극을 주었지만, 특히 남아시아 역사와 페미니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서발턴’이라는 표현을 처음 도입하고 이 개념을 전 세계 지성계에 알린 인도 서발턴 연구회(Subaltern Studies Group)의 동인인 파르타 차테르지는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덕분에 서발턴 연구회가 주제와 방법 모두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겪었다고 회상한다(「「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에 관한 성찰들」). 또한 라제스와리 순데르 라잔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가 여성이 억압받는다는 단순한 관점이 아니라, 더 폭넓은 ‘젠더화’의 차원에서 인식론적‧역사적으로 서발턴 여성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다고 평가한다(「죽음과 서발턴」). 이 두 저자의 글을 통해 우리는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가 (여성) 서발턴들이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말이 우리에게 도달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적 체계를 조심스럽게 읽어 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었음을 알게 된다.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를 관통하는 질문 중 하나는 “타자를 어떻게 타자 그 자체로 존중할 것인가?”이다. 이는 ‘윤리’의 문제에 집중하는 스피박의 이후 작업들을 지탱하는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리투 비를라는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에서 ‘대타성’(alterity)이라는 개념을 추출해, 그 개념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이후의 저작들에 어떤 형태로 스며들어 있는지를 밝힌다(「포스트식민 연구」). 한편 스피박의 ‘윤리적 전환’에 초점을 맞추는 드루실라 코넬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이후 스피박이 ‘인권’ 문제에 개입하면서 애초 문제틀을 확장하고 변용한 경로를 보여 준다(「인권의 윤리적 긍정」). 서발턴이 말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서발턴에게 말을 걸 수 있는가? 스피박은 계속해서 이 질문을 던졌고, 코넬은 ‘책임(responsibility)의 윤리’라는 스피박 개념이 타자의 말을 듣고 그들과 함께하는 데서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책임이란 ‘타자에게 응답(response)할 수 있음’이며, 이를 위해서는 ‘인문학 교육’을 통한 “욕망의 비강제적 재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스피박의 주장이다.

19세기 미국 노예제에서 오늘날 국제 노동 분업에 이르기까지 서발턴들의 흔적을 읽는다

이 책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에 담긴 스피박 사유의 독창성을 해명해 줄 뿐 아니라, 스피박의 개념들을 여러 영역에 접속시키는 시도들도 담고 있다. 압둘 잔모하메드는 미국 남부의 노예였지만 북부로 도망쳐 노예제 폐지 운동가가 된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의 자서전을 면밀하게 읽으면서, 서발턴과 죽음의 연관, 서발턴과 말하기라는 주제를 파고든다(「말하기와 죽기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노예는 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노예 상태에 묶여 있다. 반면 더글러스는 ‘목숨을 걸고’ 노예제에서 탈출함으로써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자신의 목숨까지도 포기하려는 이 심층의 ‘부정성’ 덕분에 그는 서발턴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그가 필사적으로 배운 ‘글 읽기’ 능력 덕분에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길 수 있었다. 이렇듯 잔모하메드의 글은 서발턴이 자신을 둘러싼 조건들에서 빠져나가게 되는 구조를 제시해 준다. 반면 미셸 바렛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사망하거나 실종된 식민지 군인들이 전쟁 기억에서 어떻게 삭제되었는지를 드러낸다(「참전 서발턴들」). 이 군인들의 이름은 전쟁 기념비에 기입되지 못했으며, 오직 명부에만 등록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 속에서 식민지 군인들이 침묵당한 채 사라져 간 과정을 추적하는 바렛의 글은, 말할 수 없고 들릴 수도 없는 서발턴이라는 규정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서발턴들은 어떤가? 펭 치아는 동남아시아 국가들 내의 세력 관계 안에서 저개발 국가들이 선진국으로 가사 도우미를 송출하는 ‘국제 재생산 노동 분업’의 현장을 추적한다(「생명권력과 국제 재생산 노동 분업」). 그는 ‘국제 노동 분업’을 간과하는 제1세계 지식인들에 대한 스피박의 비판에 지지를 보내지만, 이데올로기를 중시하는 스피박보다 생명정치(biopolitics)에 집중하는 푸코의 방법론에 공감을 표한다. 이런 전제 위에서 치아는 생명권력이 저개발 국가의 여성을 국제 재생산 노동 분업에 생산적으로 병합한다고 말한다. 생명권력 테크닉에 의해 이 여성들이 가사 도우미로서 이 분업에 (억압받으면서가 아니라) ‘기꺼이’ 참여한다는 것이다. 또한 치아는 이 가사 도우미들의 비인간적 조건들을 개선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도구성’을 초월하려는 어떤 시도도 기만적이며, 이 도구성 안에서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 진 프랑코는 라틴아메리카로 무대를 옮겨, 토착민 여성들의 ‘비밀 유지’(secrecy) 관습이 자율성 보호로 이어지는 경로를 탐색한다(「서발터니티로부터 이동하기」). 이 여성들은 서발턴적인 조건들에 처해 있지만,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여성들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자신들의 관습을 유지하는 가운데 그 안에서 서로 ‘아래로부터의 배움’을 실천하고 있다. 이것은 서발턴이 자신을 둘러싼 조건에서 벗어나 공공 영역으로 진입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유의미한 사례이다.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에서 ‘어떻게 들을 것인가?’로

5부의 「응답: 뒤를 돌아보며, 앞을 내다보며」에서 스피박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압축적으로 회상함으로써, 이 책에 수록된 여러 연구자들이 준 자극에 우회적으로 응답한다.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마지막 부분에 등장한 부바네스와리 바두리는 스피박의 이모할머니였다. 바두리는 자살하면서 자신의 몸으로 메시지를 썼지만, 그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았다. 이모할머니의 자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고심하면서 스피박은 맑스를, 서발턴 연구회를, 자크 데리다를 만났고, 그 복합적인 성찰의 결과물이 바로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였다. 이후 스피박은 ‘서발턴의 말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타자에 대한 응답’을 뜻하는 ‘책임의 윤리’를 이론화했다. 또한 이러한 이론 작업 외에도 서발턴에게 말을 걸고 그들과 더불어 활동하기 위해 인도‧중국 등의 농촌에 학교를 세웠고, 거기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시에 아이들에게 배우고 있다. 이처럼 스피박에게 난해한 이론 작업과 열정적인 기초 교육 실천은 별개의 활동이 아니다. 이 활동들은 그녀가 구상한 기획의 두 측면이며 서로를 보완한다.

미국에서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이 한창일 때 스피박은 그에 관한 짧은 글을 한 편 발표했다. 「총파업」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 글에서 스피박은 “일반 서민들, 즉 99%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서발턴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서발턴은 말할 수 없는 사람들, 혹은 말했지만 우리에게 들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사회의 최하층에 있는 사람들, 국제 노동 분업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이 가장 분명한 서발턴이겠지만, 젠더의 수준에서, 인종의 수준에서, 기타 다양한 수준에서 서발턴인 이들도 있으며, 그 서발턴은 우리 옆에 있는 누군가일지도 모른다. 스피박은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서발턴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책임의 윤리를 실천하기를, 들리지 않는 타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를, 아래로부터의 교육을 통해 이 능력을 증대시키기를 요청한다. 혹자는 스피박이 해답을 주지 않는다며 그녀를 비판한다. 하지만 스피박의 목표는 답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그녀의 질문을 공유하게 될 것이며, 아마도 서발턴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는 그녀의 노력에 더 잘 동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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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옮긴이 소개 펼치기


2013/05/06 08:50 2013/05/06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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