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시티」를 좋아한다고 하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아니 나름 페미니스트의 향기를 풍기는 네가 어떻게 그런 초! 마초 영화를 좋아하냐고 대놓고 물어보진 않지만, 제 대답을 듣고 살짝 의아하게 여기는 분위기, 많이 느낍니다. 여자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주인공들과 폭력과 피로 얼룩진 ‘신 시티’에서 살아남으려는 등장 인물들. 게다가 거기서 여성들은 성노동을 하거나,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해 죽고 마는 보호 감찰관 이죠. 뭐 맞는 지적입니다.

로버트 로드리게스 作「신 시티」, 「플래닛 테러」
또 요새 본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뭐냐라고 다시 물으신다면, 전 다시 로드리게스 감독의 「플래닛 테러」(Planet Terror)라고 말합니다. 그것도 또 마초 영화 아니냐고 반문하실 겁니다. 첫 장면부터 카메라는 마치 여성의 몸을 만지는 것처럼 찍어가는데,(영화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첫 장면에 체리가 춤을 추는 부분은 정말 눈으로 몸을 만진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잘 알게 해주죠)그런 영화를 좋아하더니 너 정말 실망이야 요러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헐리우드의 다른 감독들과 비교해서 로드리게스는 그나마 자신이 찍는 마초 영화에서도 절대 여성들을 배제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전 감히 생각합니다.(게다가 요샌 그가 진화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슘따) 초반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신 시티」를 거쳐 「플래닛 테러」까지 그의 영화에서 여성은 점점 달라지고 있죠.
1) 성 노동은 죄가 아니다
한국에서 성 노동은 그냥 노동이 아닙니다. 온갖 사회적 의미가 복합적으로 얽힌 노동이죠. 노동이면서도 노동이 아닌 것처럼 생각되고, 몸의 문제뿐만 아니라 감정까지도 동시에 투입되는 노동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기묘하게도 여성에게 있어선 사회적 타락(?)을 의미하는 노동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 영화들 속 여성들에겐 어떤 도덕적 잣대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낸시는 스트립걸로 살아갑니다.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생계수단으로서 클럽의 스트립걸로 살아가죠. 영화 안에서 낸시에게 편하게 살려고 스트립쇼 한다라거나, 게을러서 저러고 산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녀에게 스트립쇼는 그저 일일 뿐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지요.
올드 타운의 여성들은 어떻구요. 영화를 보다 보면 신 시티의 올드 타운은 그냥 만들어진 곳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신체를 착취하여 배를 불리는 포주와 약물 중독이 되게 만들어 그녀들을 그 공간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갱들을 피해 그녀들 스스로가 만든 공간입니다. 경찰에게 얼마 정도의 돈을 내고, 대신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치외법권 지역을 만든 겁니다. 영화를 보면 잘 알겠지만 그녀들은 그곳에 강제로 묶여 있거나, 한국 사회처럼 창문도 없는 곳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그녀들은 그 공간을 마치 직장처럼 생각하고 출퇴근(?)을 합니다. (영화 속에서 베키는 시간이 다 되었으니 집에 가겠다고 말하고, 사람들은 조심히 집에 가라고 하죠)
2) 피해자임을 거부한다
신 시티 같은 곳에서 여성들이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교회 권력과 세속 권력이 일치해 있고, 마치 왕국처럼 한 집안이 지배하고 있는 도시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신 시티의 골디와 플래닛 테러의 다코타는 모두 남성의 폭력에 노출돼 있는 여성들입니다. 골디는 교회 권력으로 진입하려다가 살해당하고, 다코타는 정신병자 같은 남편이 자신과 아이를 죽일까 봐 두려워하며 살고 있죠.

맞닥뜨리고 있는 폭력의 상황에서 피해자의 포지션을 취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로드리게스의 영화에서 나오는 여성들은 그 포지션을 늘 벗어납니다.
그녀들은 이런 폭력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모든 것들을 거부합니다. 쌍둥이 동생 골디가 죽었는데도 웬디는 그녀를 죽인 사람을 찾아 복수하겠다고 나서죠. 다코타는 미친 남편을 피해 도망가겠다고 계획을 세웁니다. 사실 이런 폭력의 상황에서 우리는 보통 ‘피해자 다움’ 혹은 피해자가 취하는 포지션을 생각하죠. 얌전하게 있거나 혹은 삶의 의지를 꺾고 무기력하게 살거나. 어쩌면 권력은 그런 것을 요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끊임없는 폭력과 공포로 그녀들의 정체성을 피해자로 만들고,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게 하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그녀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폭력의 상황에선 어쩌면 피해자의 포지션을 취하는 것이 살기 위한 한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러지 않죠. 들키면 남편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남편에게서 탈출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 다코타. 동생을 위해 복수하다가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무릅쓰면서 복수를 실행하는 웬디. 이들이 성공하는지 못 하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녀들에게 부여하는 위치를 과감하게 거부했다는 거죠
3) 여자의 동료는 여자!
흔히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하죠. 전 ‘남자의 적도 남자’라는 말로 대꾸해 주긴 합니다만, ‘남자의 적은 남자’라는 말, 잘 사용되진 않죠. 이상하게 우리 사회 안에서는 ‘여자의 적은 여자’란 말이 유난히도 도드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의 연대는 아주 느슨하고 금방 깨지기 쉽다고 생각하죠.
전 로드리게스의 두 영화 안에서 여성들이 움직이는 방식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녀들은 결코 혼자 다니는 법이 없습니다. 신 시티에서 올드 타운은 성노동을 하는 여성들의 공간이지만,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은 남성들이 아니라 여성입니다. 그녀들이 룰을 만들고, 그녀들 스스로가 그 공간을 지배하죠. 실수로 경찰관을 죽여, 올드 타운이 어렵게 차지하고 있는 자치가 깨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 될 때도 도망가거나 다른 편에 붙거나 그러지 않죠. 문제가 있으면 직접 해결합니다. 재키 보이의 시체도, 배신자도 그녀들이 직접 처리하죠.

'여성의 적은 여성'? 사실 우리 일상에서도 저러한 통념을 깨는 예들은 많습니다.
문제는 저러한 통념이 왜 나왔을까 하는 점입니다.
올드 타운의 언니들은 저렇게 자신들의 자치 문제만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올드 타운의 구성원인 골디가 죽고, 그 언니인 웬디가 복수를 하겠다고 했을 때, 사실 그런 문제는 개인적인 문제인데도, 올드 타운의 언니들은 함께 나섭니다. 올드 타운 안에서는 개인의 문제와 집단의 문제가 따로 존재하질 않습니다. 그녀들은 잘 알고 있죠. 포주와 갱들과 경찰이 자신들의 공간을 차지하고 그녀들을 착취해서 돈을 벌려고 한다는 걸. 그래서 올드 타운의 연대가 깨어지기만을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그 언니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올드 타운은 여성들의 연대 때문이라는 이유로 아슬아슬한 게 아니라, 틈만 보이면 그녀들을 집어 삼키려는 외부 때문에 가벼울 수 있다는 걸요. 그런 연대를 유지하기 위해 이 언니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앞서 신 시티라는 도시 자체가 사용하는 공포와 폭력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마저도 함께 나누면서 어려움을 공유하는 방법으로 올드 타운의 언니들은 자신들의 공간을 유지합니다. 어쩌면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이 말. 사실은 공포와 폭력 없이도 유지되는 올드 타운 언니들의 연대를 시샘하기 위한 신 시티의 전략일지도 모르죠.
- 편집부 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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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사실 저도 신 시티 꽤 좋았는데, 플래닛 테러도 봐야겠네요
아,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신시티는 봤는데 아직 플래닛 테러는 못봐서, 같이 볼까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