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폭력, 더이상 꽃을 받지 않겠어요
이 언니를 만나다
2008/12/16 11:10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 '아내 폭력'을 말하다
한 7년 전이었습니다. 어딘가에서 “살려 주세요”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람이 위급한 경우에 지르는 비명이라고 하기엔 소리가 좀 작았죠.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밖을 나가 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죠. 무슨 소릴까? 시끄럽게 떠들던 저희 식구들은 소리의 근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살려 달라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남자의 큰 목소리와 뭔가 부딪히고 깨지는 소리가 나더군요. 남자의 목소리는 꽤 익숙한 소리였습니다. 먼 곳도 아닌 제가 당시 살던 집 앞집, 평소엔 너무 친절해서 저희 부모님이 침이 마르게 칭찬하던 남자, 바로 그 앞집 아저씨가 아내를 때리던 소리였습니다.
나중엔 아내의 비명소리가 더욱 커져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아내 폭력이 있을 땐 경찰에 당연 신고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저는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남의 집 가정사에 참견하는 거 아니라고 저를 한 대 때리시더군요(물론 이 문제로 앞집 못지않게 딸 셋과 어머니가 열심히 싸웠습니다). 한참 저희끼리 싸우고 있는데, 앞집의 비명소리가 조용해졌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젠 괜찮아졌구나 하고 다들 지나갔죠. 하지만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 앞집 아저씨가 저희 집에서 하도 딸들이 신고한다고 떠들어서, 아주머니가 더 소리 지르지 못하도록 뭔가 입에 물렸다는 걸요. 그래서 저희는 누군가 소리도 못 내며 맞고 있었을 때,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지금은 지나간 기억이라고 담담하게 말하지만, 여전히 가끔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서늘해지는, 철들고 경험한 아내 폭력 사건입니다.
오늘 만난 언니의 책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이 제목은 아내 폭력에 관한 유명한 시+ 구절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전 당시 열정만 넘치고 머리에 든 건 없었기에 무슨 내용인지 감도 잘 잡지 못했죠. 책장을 넘겨 한 줄 한 줄 읽어 나가는데, 뭔가 부끄럽고, 화나고, 마음은 답답하고 그러더군요. 이 책의 저자 정희진 언니는 10년간 여성 폭력 문제를 상담하고 공부하면서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보통 여성 폭력 문제에 관한 책들은 담론 수준에서 논의하다 그치고 마는데, 이 책은 꽤나 세밀한 사례들과 직접 경험한 사건들로 우리 안의 견고한 가부장제, 또 그 체제가 얼마나 여성에게 억압적으로 기능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줍니다.
+ '피해 여성이 피해 여성에게 주는 편지', 작가 미상
1) 아내 폭력과 가정 폭력, 그 미묘한 차이
사실 우리에겐 ‘아내 폭력’이란 말보다 ‘가정 폭력’이란 말이 더 익숙합니다. 좀더 거칠게 말해 보자면 우리에게 ‘가정 폭력’은 ‘아내 폭력’을 확대한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요. 그래서 쉽게 아내 폭력 사건들을 가정 폭력 사건이라고 지칭합니다. 하지만 아내 폭력 사건에 대해 가정 폭력이라고 하는 거 맞을까요? 저도 사실 이 글을 쓰다가 초반에 저도 모르게 가정 폭력 사건이라고 지칭했습니다. 아니 뭐 별 것도 아닌데 까탈을 부려~ 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 말 사이의 간극, 참으로 미묘합니다.
언니가 봤을 때 ‘가정 폭력’이라는 말은 사실 많은 걸 은폐해 버립니다. 우선 사람들은 ‘가정’이란 말을 들을 때, 가족들끼리 모여 있는 아주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라이버시 문제로 남의 손이 닿지 않기를 바라는 곳이죠. 그러다 보니 그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들, 누가 죽을 만큼 폭행을 당하거나 학대와 유기로 방치되어 있다 하더라도 누군가 관여해서는 안 되는 영역, 저희 어머니 말씀처럼 사적인 일들이라 외부인이 개입해서 안 되는 것으로 변해 버리죠. 당연한 거 아니냐고 물으시겠지만, 실제로 이런 말들은 그 안의 피해자를 가려 버리고, 심각한 폭력 문제를 사소한 일로 치부해 버리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신고로 경찰이 온다 하더라도, 경찰이 하는 이야기는 아저씨가 참으세요 뭐 이런 이야기가 되어 버리고, 폭력 남편은 내 마누라 내가 때리는데 무슨 상관이야, 라는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거죠.
‘아내 폭력’이라는 말은 ‘가정 폭력’이라는 말과 달리 피해에서 드러나는 성적 권력 관계를 명확하게 드러내 줍니다. 사실 제가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사건 안에서도, 남성은 자신의 지위 즉, 여성을 가르치고 훈육할 수 있는 대상의 역할을 수행했죠. 그래서 밤 늦게 들어온 아내를 단죄하고, 더 이상 그러지 못하도록 가르치는 역할로 아내에게 폭력을 가했던 것입니다. 이건 불안정한 가족 관계라는 이야기로는 설명될 수 없습니다. 이런 성적 권력 관계의 관점으로 가정 내 폭력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우리가 홈 스위트 홈이라고 여기는 곳이 사실은 남성이 부과한 여성의 성역할 수행 능력에 따라 안정과 불안정이 결정되는 곳이라는 것, 그 안정과 불안정을 결정하는 주체가 남성에게만 한정되어 있어서, 가족 공간이 결코 평등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 (전 사실 아내라는 말도 남편과의 결혼 관계 안에서만 성립하는 말 같아 여성 폭력이라는 말을 선호합니다만, 가정 내 폭력의 권력 관계를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선 아내 폭력이라고 지칭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별 차이 없는 것 같은 우리 안의 언어들이 아주 미묘하게 많은 것들을 가리고, 볼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죠. 특히 아내 폭력의 문제에서 아내 폭력의 관점이 아니라 가정 폭력이라는 틀로 보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도 알게 되었구요. 하지만 전 이런 점보다 여성에게 일어나는 그 많은 폭력들이 여성의 책임으로 돌려진다는 것, 또한 엄청난 피해가 있기 전에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는 그 이상한 사실을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됐습니다.
2) 피해로 인정받기 위하여
아내 폭력이 공적인 문제로 전환되는 경우는 두 가지입니다. 견디다 못해 남편을 죽이든가, 아니면 맞다 죽든가. 아내 폭력 문제만 그런가요? 성폭력 문제도 그렇죠. 저항하다가 가해자를 죽이든가, 아니면 저항하다 죽든가 해야만 사회적인 문제로 다뤄집니다. 그전까진 결코 우리들에게 보이지 않죠. 항상 피해가 가시화되어서야 문제로 성립하고, 문제 해결이라는 건 피해 이전이 아니라 피해가 발생한 이후에만 가능하죠. 심각하지 않다면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 폭력, 그래서 언제나 이 문제에 대해선 얼마나 맞았냐? 얼마나 아팠냐? 언제까지 여성들은 몸으로 피해를 증명하고, 고통의 유무로 여성의 정치적 입장을 결정해야 하는 걸까요?
게다가 늘상 말씀드리지만 이 고통의 정치학은 우리에게 언제나 위축되고, 불안하고, 고립되어 있는 피해자다움을 그 핵심 요소로 삼고 있죠. 이 피해자다움은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내 피해 정도를 판단해 줄 수 있는 누군가를 위해서 필요하죠. 참 어이없지 않습니까? 남편에게 맞았는데, 그 남편에게 맞았다는 걸 증명해 주는 피해자 인정 역시 법(남성)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 뒤집어 말하면 가부장적 체제 안에선 피해의 문제가 내가 고통받았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누군가(남성)가 인정해 줘야만 고통이 되고 피해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가부장제 체제 안에선 여성이 피해자로 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피해자다움이라는 아주 미묘한 요건들까지 충족해야 겨우 여성의 피해를 알릴 수 있다는 거죠.
전 책을 읽고 난 후, 바로 앞에서 아내 폭력 사건을 보게 되면서 아내 폭력이 가정 내 폭력 문제 중 하나라는 생각을 버리게 됐습니다. 이 문제는 철저하게 남편의 폭력 행위가 발생하는 시점에만 성립되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일어나는 언어 폭력이나 혹은 암묵적 폭력 문제들을 아예 알 수 없게 만드니까요. 오히려 더 위험한 방식으로 아내에게 피해를 주고 있어도 물리적 폭력이 없으면 다들 화목한 가정이구나 하고 생각할 테니까요.
정희진 언니의 말처럼, 지금 우리가 처한 환경, 여전히 아내 폭력을 가족 내 문제 정도로 생각하고, 남편의 가해 행위가 없으면 폭력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이 태도로는 아내 폭력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사실 없어 보입니다. 법 안에서도 여전히 기존의 해결 방식(예를 들면 잠깐 매 맞는 아내를 남편과 격리시키거나 경찰관이 와서 아저씨 그만 하세요, 하는 접근 방식)을 고수한다면 정말 은밀한 문제로 취급되어 누군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게다가 피해자다움까지 끼어든다면 정말 매 맞는 여성이 폭력 문제의 주체로 행위하기도 쉽지가 않겠죠. 쓰다 보니 끝도 없네요. 이 사안과 연관된 이야기들은 다음 기회에 한 번 더 논의해 보겠습니다~ 오늘 글은 이 정도에서 마치겠습니다.
― '아내 폭력'을 말하다
한 7년 전이었습니다. 어딘가에서 “살려 주세요”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람이 위급한 경우에 지르는 비명이라고 하기엔 소리가 좀 작았죠.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밖을 나가 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죠. 무슨 소릴까? 시끄럽게 떠들던 저희 식구들은 소리의 근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살려 달라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남자의 큰 목소리와 뭔가 부딪히고 깨지는 소리가 나더군요. 남자의 목소리는 꽤 익숙한 소리였습니다. 먼 곳도 아닌 제가 당시 살던 집 앞집, 평소엔 너무 친절해서 저희 부모님이 침이 마르게 칭찬하던 남자, 바로 그 앞집 아저씨가 아내를 때리던 소리였습니다.
나중엔 아내의 비명소리가 더욱 커져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아내 폭력이 있을 땐 경찰에 당연 신고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저는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남의 집 가정사에 참견하는 거 아니라고 저를 한 대 때리시더군요(물론 이 문제로 앞집 못지않게 딸 셋과 어머니가 열심히 싸웠습니다). 한참 저희끼리 싸우고 있는데, 앞집의 비명소리가 조용해졌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젠 괜찮아졌구나 하고 다들 지나갔죠. 하지만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 앞집 아저씨가 저희 집에서 하도 딸들이 신고한다고 떠들어서, 아주머니가 더 소리 지르지 못하도록 뭔가 입에 물렸다는 걸요. 그래서 저희는 누군가 소리도 못 내며 맞고 있었을 때,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지금은 지나간 기억이라고 담담하게 말하지만, 여전히 가끔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서늘해지는, 철들고 경험한 아내 폭력 사건입니다.
프랑스 법무부 아내 폭력 근절 광고
_ "je t'aime..(널 사랑해..) un peu..(조금..) beaucoup..(많이..) passionnément..(열렬하게..) à la folie..(미칠듯이..) ......... pas du tout (절대 아니다)"
유럽 안에서는 프랑스가 아내 폭력 발생 건수 1위라고 합니다. 어느 곳에서나 아내 폭력 문제는 사적인 문제로 치부되어 쉽게 해결되지 않죠.
_ "je t'aime..(널 사랑해..) un peu..(조금..) beaucoup..(많이..) passionnément..(열렬하게..) à la folie..(미칠듯이..) ......... pas du tout (절대 아니다)"
유럽 안에서는 프랑스가 아내 폭력 발생 건수 1위라고 합니다. 어느 곳에서나 아내 폭력 문제는 사적인 문제로 치부되어 쉽게 해결되지 않죠.
오늘 만난 언니의 책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이 제목은 아내 폭력에 관한 유명한 시+ 구절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전 당시 열정만 넘치고 머리에 든 건 없었기에 무슨 내용인지 감도 잘 잡지 못했죠. 책장을 넘겨 한 줄 한 줄 읽어 나가는데, 뭔가 부끄럽고, 화나고, 마음은 답답하고 그러더군요. 이 책의 저자 정희진 언니는 10년간 여성 폭력 문제를 상담하고 공부하면서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보통 여성 폭력 문제에 관한 책들은 담론 수준에서 논의하다 그치고 마는데, 이 책은 꽤나 세밀한 사례들과 직접 경험한 사건들로 우리 안의 견고한 가부장제, 또 그 체제가 얼마나 여성에게 억압적으로 기능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줍니다.
+ '피해 여성이 피해 여성에게 주는 편지', 작가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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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내 폭력과 가정 폭력, 그 미묘한 차이
사실 우리에겐 ‘아내 폭력’이란 말보다 ‘가정 폭력’이란 말이 더 익숙합니다. 좀더 거칠게 말해 보자면 우리에게 ‘가정 폭력’은 ‘아내 폭력’을 확대한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요. 그래서 쉽게 아내 폭력 사건들을 가정 폭력 사건이라고 지칭합니다. 하지만 아내 폭력 사건에 대해 가정 폭력이라고 하는 거 맞을까요? 저도 사실 이 글을 쓰다가 초반에 저도 모르게 가정 폭력 사건이라고 지칭했습니다. 아니 뭐 별 것도 아닌데 까탈을 부려~ 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 말 사이의 간극, 참으로 미묘합니다.
언니가 봤을 때 ‘가정 폭력’이라는 말은 사실 많은 걸 은폐해 버립니다. 우선 사람들은 ‘가정’이란 말을 들을 때, 가족들끼리 모여 있는 아주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라이버시 문제로 남의 손이 닿지 않기를 바라는 곳이죠. 그러다 보니 그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들, 누가 죽을 만큼 폭행을 당하거나 학대와 유기로 방치되어 있다 하더라도 누군가 관여해서는 안 되는 영역, 저희 어머니 말씀처럼 사적인 일들이라 외부인이 개입해서 안 되는 것으로 변해 버리죠. 당연한 거 아니냐고 물으시겠지만, 실제로 이런 말들은 그 안의 피해자를 가려 버리고, 심각한 폭력 문제를 사소한 일로 치부해 버리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신고로 경찰이 온다 하더라도, 경찰이 하는 이야기는 아저씨가 참으세요 뭐 이런 이야기가 되어 버리고, 폭력 남편은 내 마누라 내가 때리는데 무슨 상관이야, 라는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거죠.

프리다칼로 作 <상처 입은 사슴>
_ 가족 안에서 여성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우받기보단 남성의 소유물, 끊임없이 훈육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되죠. 그래서 남편들은 자신의 폭력 행사를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는군요.
_ 가족 안에서 여성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우받기보단 남성의 소유물, 끊임없이 훈육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되죠. 그래서 남편들은 자신의 폭력 행사를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는군요.
‘아내 폭력’이라는 말은 ‘가정 폭력’이라는 말과 달리 피해에서 드러나는 성적 권력 관계를 명확하게 드러내 줍니다. 사실 제가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사건 안에서도, 남성은 자신의 지위 즉, 여성을 가르치고 훈육할 수 있는 대상의 역할을 수행했죠. 그래서 밤 늦게 들어온 아내를 단죄하고, 더 이상 그러지 못하도록 가르치는 역할로 아내에게 폭력을 가했던 것입니다. 이건 불안정한 가족 관계라는 이야기로는 설명될 수 없습니다. 이런 성적 권력 관계의 관점으로 가정 내 폭력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우리가 홈 스위트 홈이라고 여기는 곳이 사실은 남성이 부과한 여성의 성역할 수행 능력에 따라 안정과 불안정이 결정되는 곳이라는 것, 그 안정과 불안정을 결정하는 주체가 남성에게만 한정되어 있어서, 가족 공간이 결코 평등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 (전 사실 아내라는 말도 남편과의 결혼 관계 안에서만 성립하는 말 같아 여성 폭력이라는 말을 선호합니다만, 가정 내 폭력의 권력 관계를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선 아내 폭력이라고 지칭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별 차이 없는 것 같은 우리 안의 언어들이 아주 미묘하게 많은 것들을 가리고, 볼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죠. 특히 아내 폭력의 문제에서 아내 폭력의 관점이 아니라 가정 폭력이라는 틀로 보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도 알게 되었구요. 하지만 전 이런 점보다 여성에게 일어나는 그 많은 폭력들이 여성의 책임으로 돌려진다는 것, 또한 엄청난 피해가 있기 전에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는 그 이상한 사실을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됐습니다.
2) 피해로 인정받기 위하여

“아이는 어머니의 눈을 가졌다. 그리고 커서 아버지의 손을 가질 것이다”
_ 아내 폭력은 곧 다른 폭력을 발생시킵니다. 하지만 피해가 발생하기 이전엔 어느 누구도 아내 폭력에 대해 신경 쓰지 않죠.
_ 아내 폭력은 곧 다른 폭력을 발생시킵니다. 하지만 피해가 발생하기 이전엔 어느 누구도 아내 폭력에 대해 신경 쓰지 않죠.
게다가 늘상 말씀드리지만 이 고통의 정치학은 우리에게 언제나 위축되고, 불안하고, 고립되어 있는 피해자다움을 그 핵심 요소로 삼고 있죠. 이 피해자다움은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내 피해 정도를 판단해 줄 수 있는 누군가를 위해서 필요하죠. 참 어이없지 않습니까? 남편에게 맞았는데, 그 남편에게 맞았다는 걸 증명해 주는 피해자 인정 역시 법(남성)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 뒤집어 말하면 가부장적 체제 안에선 피해의 문제가 내가 고통받았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누군가(남성)가 인정해 줘야만 고통이 되고 피해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가부장제 체제 안에선 여성이 피해자로 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피해자다움이라는 아주 미묘한 요건들까지 충족해야 겨우 여성의 피해를 알릴 수 있다는 거죠.
전 책을 읽고 난 후, 바로 앞에서 아내 폭력 사건을 보게 되면서 아내 폭력이 가정 내 폭력 문제 중 하나라는 생각을 버리게 됐습니다. 이 문제는 철저하게 남편의 폭력 행위가 발생하는 시점에만 성립되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일어나는 언어 폭력이나 혹은 암묵적 폭력 문제들을 아예 알 수 없게 만드니까요. 오히려 더 위험한 방식으로 아내에게 피해를 주고 있어도 물리적 폭력이 없으면 다들 화목한 가정이구나 하고 생각할 테니까요.
정희진 언니의 말처럼, 지금 우리가 처한 환경, 여전히 아내 폭력을 가족 내 문제 정도로 생각하고, 남편의 가해 행위가 없으면 폭력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이 태도로는 아내 폭력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사실 없어 보입니다. 법 안에서도 여전히 기존의 해결 방식(예를 들면 잠깐 매 맞는 아내를 남편과 격리시키거나 경찰관이 와서 아저씨 그만 하세요, 하는 접근 방식)을 고수한다면 정말 은밀한 문제로 취급되어 누군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게다가 피해자다움까지 끼어든다면 정말 매 맞는 여성이 폭력 문제의 주체로 행위하기도 쉽지가 않겠죠. 쓰다 보니 끝도 없네요. 이 사안과 연관된 이야기들은 다음 기회에 한 번 더 논의해 보겠습니다~ 오늘 글은 이 정도에서 마치겠습니다.
- 편집부 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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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잘봤습니다. 학교에서 여성학 수업을 듣는데 가정폭력에 대한 내용도 수업에 포함되어서 이 글이 특히나 공감이 되는군요.
pantera님, 안녕하세요.
가정 폭력을 여성학에서 다뤄야 하고, 또 다룰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꽃을 받았습니다..
그이도 나에게 미안한 걸꺼에요 ..
그래서 나에게 꽃을 사온걸꺼에요 ..
꽃을 받았습니다..
그이가 날 떄린게 미안한 걸꺼에요..
술을 먹고 들어와 날때린게 미안해서..
그래서 나에게 꽃을 사온걸꺼에요 ..
꽃을 받았습니다..
그이가 내 재산을 훔친게 미안한 걸꺼에요..
집으로와 모든 재산을 가지고 도망간게 미안한걸꺼에요 ..
꽃을 받았습니다 ..
그이가 날때린게 미안한 걸꺼에요 ..
나를 정신을 잃게 한것을 미안한 걸꺼에요 ..
나는 오늘 꽃을 받았습니다..
그이가 국화꽃을 주엇네요..
평소에 주지도 않던 국화꽃을요..
어두컴컴한 곳에 정신을 잃고누워 꽃을 받았습니다..
나는 오늘 꽃을 받았습니다..
i님, 안녕하세요.
더이상은 이런 시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왓 님의 시 좋군요.
그 날카로운 인식을 현실에서도 적용하시길
아... 정말 맘에 안드는 문제이죠 ^^;;
이해도 못할 뿐더러 말도 안돼죠
있을수도 없을 뿐더러 있어서도 안돼죠
가정사 이기 때문에 신경쓰지 말라?
그런 폭력이 가정사라서 신경쓰지 말라면
저는 단걸음에 신고하겠습니다 =ㅅ= 흥!
안녕하세요, 레몬에이드님. ^^
네.. 가정사로 치부해 버리는 사고에서 벗어나야겠죠.
신고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서 더더욱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잘 읽었고 공감하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보고 지나치기 어려운 주장도 있네요.
(인용) 남편에게 맞았는데, 그 남편에게 맞았다는 걸 증명해 주는 피해자 인정 역시 법(남성)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 뒤집어 말하면 가부장적 체제 안에선 피해의 문제가 내가 고통받았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누군가(남성)가 인정해 줘야만 고통이 되고 피해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인용 끝)
아내폭력에 대해 법적 처벌을 하기 위해 사법부에 호소하는 것을 어떻게 '남성의 인정'과 연결짓는지요? 여성 억압이 없는 사회라도 사법부는 존재할텐데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남성보다 한참 낮은 만큼, 여성주의자들의 사회적 효용성을 인정합니다만 왜 세상 만사를 여성주의적 잣대로만 끼워맞추려 드는지 모르겠어요.
남성이나 여성이나 성별 차이를 떠나서 일단 인간이며, 성 불평등의 문제도 경제나 정치, 교육, 법, 노동, 인권 문제와 같이 여러 인간사회가 겪는 문제들의 일부분입니다. 예컨데 가부장제가 사라지면, 다른 온갖 병폐(예컨데 아동폭력이나 지역차별)들도 저절로 없어지며 사법부나 경찰, 군대가 필요없는 사회가 도래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