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확신이란 이름의 폭력
1. 어톤먼트(속죄)

영화 「어톤먼트」
「어톤먼트」, 참 잘 만든 영화죠. 혹자는 원작소설보다 못하다고 하기도 하지만 원작은 아직 보지 못한 저로서는 어쨌거나 이 영화가 참 좋습니다. 흠. 오늘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은 바로 이 「어톤먼트」러브스토리의 당사자들!이 아니라, 그 러브스토리를 가로막았던 소녀, 브라이오니입니다.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와 로비(제임스 맥카보이), 둘은 사랑하는 사이고, 오늘의 주인공 브라이오니는 세실리아의 어린 여동생입니다. 한때 (어린 마음에) 언니의 연인인 로비를 좋아하기도 했던 아이는 자신의 언니와 로비가 사랑하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고 충격을 받습니다. 로비가 자기 언니를 괴롭히는 거라고 생각하지요(음.. 자세가 좀 그렇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감수성을 가진 소녀의 마음이 채 진정이 되지 않았을 적에 그 집에 놀러온 친척 소녀가 성폭행 비슷한 걸 당하게 되는데 이때 브라이오니는 범인으로 언니의 연인인 로비를 지목합니다. 자기가 똑똑히 봤노라고 증언하지요. 이 꼬마의 증언으로 로비는 연인과 생이별을 하게 되고 로비는 감옥에 갔다가, 또 전쟁터에 나가게 되지요. 수년 동안 로비는 누명을 쓰고 그 모욕에 괴로워하고, 또 헤어짐에 괴로워하면서 지냅니다.
2.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지하철 변태 아저씨의 불쾌한 모습으로 시작되는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일본 사법체계의 비겁함과 우스움을 폭로하는 영화입니다만, 오늘 제가 이야기할 주제가 그런 건 아니고요-_-;; 오랜 ‘프리터’ 생활을 청산하기 위한 면접을 보러 가는 길. 가세 료는 한 소녀에게 손목을 붙잡힙니다. “아.. 아저씨죠?(내 엉덩이 만진 사람)” 만원 전철에 탔다가 순식간에 변태로 몰린 가세 료는 파출소로 끌려가고, 취조와 협박(“자수해라!”)에 굴하지 않고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끝까지 항변합니다. 파출소 취조실 옆방의 진짜 변태 아저씨는 범행 사실을 인정하고 오전에 유치장으로 끌려갔다가 오후에 풀려나지만, 진짜 변태가 아닌 가세 료는 아니라고 하는데도 유치장에 며칠이고 잡혀 있게 됩니다. 피해자 소녀의 증언 덕분이지요. 치마 속으로 들어오는 손의 소매 색을 봤는데, 그게 가세 료의 수트 색과 비슷했고, 마침 가세 료는 소녀 뒤에 서 있었고, 또 마침 가세 료는 지하철 문에 옷이 끼어서 꼼지락꼼지락거리고 있었고, 또 마침 그런 가세 료 옆에 변태 아저씨가 있었던 것이고, 또 마침 그 소녀는 늘상 당하던 성희롱을 그날만은 참지 못하고 현행범으로 체포해야겠다, 하고 생각하게 된 것이고…… 사람이 뭔가 안 되려면, 정말 이렇게 안 되는 것입니다-_-; 악운 속에서 가세 료는 변태로 몰렸고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지부진하게 재판이 진행됩니다. 어쨌거나 이 영화 속 소녀 역시 「어톤먼트」의 브라이오니처럼, 확신하게 됩니다. 내 치마에 손을 넣어 팬티 위로 엉덩이를 만진 남자가 저 가세 료가 분명하다고 말이죠.
3. 우리의 확신은 정말 확실한가
앞서 말씀드린 영화 「어톤먼트」에서 소녀 브라이오니는 좀 커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됩니다. 그러고 평생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게 됩니다(자신이 갈라 놓은 그 커플은 결국 전쟁 중에 모두 죽고, 둘만의 사랑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되거든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속 소녀는 물론 어뗳게든 범인을 잡아야 했고, 자신이 당한 폭력에 대한 보상이 (타인의 괴로움이라는 형태로) 있어야 했겠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그 소녀의 확신(혹은 그 소녀의 확인으로 인한 경찰과 검찰의 확신)은 한 남자의 인생을 수렁으로 내몰았습니다.

루벤스 作 <로마의 자비>
_ 이 그림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루벤스의 <노인과 여인>, 그리고 이 <로마의 자비>는 '음식물 투입 금지'라는 형벌이 내려진 노인을 위해 딸이 자신의 젖을 먹여 살렸다는 부녀간의 사랑과 헌신이 담긴 작품입니다. 우리는 본질을 알기도 전에 판단하고 확신합니다. 섣부른 판단, 오해와 편견, 이런 것들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이해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_ 이 그림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루벤스의 <노인과 여인>, 그리고 이 <로마의 자비>는 '음식물 투입 금지'라는 형벌이 내려진 노인을 위해 딸이 자신의 젖을 먹여 살렸다는 부녀간의 사랑과 헌신이 담긴 작품입니다. 우리는 본질을 알기도 전에 판단하고 확신합니다. 섣부른 판단, 오해와 편견, 이런 것들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이해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한번 물음을 던져 봅니다. 우리가 가끔 하는 어떤 확신, 말입니다. 그거 정말 확실한 걸까요? 아, 이 사람은 믿을 만해, 저 사람은 정말 영 아니더라, 이번만큼은 내가 하는 말이 확실해. 나만 믿어…… 이런 확신 말입니다. 그거 정말 확실한 걸까요? 우리는 가끔 우리의 판단을 너무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라기 보다는 다른 것에는 의심을 해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잘 의심하려 들지 않습니다.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 내가 판단한 것, 그것은 주체가 ‘나’가 되면서 부동의 무엇이 됩니다. 종종, 우리는 타인을 정말로 알기도 전에 이미 판단해 버리고, 어떤 사건을 알기 전에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총동원해 이미 결론을 내 버리곤 합니다. 여지는 사라지고, 설혹 그것이 그릇된 것일지라도 100%의 확신만 남습니다. 나에게 싫은 느낌으로 다가왔던 사람은 끝까지 싫은 사람이고, 우리가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은 결코 재고의 여지가 없는 일이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평소에 너무나도 많은 폭력을 저지르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무감한 폭력으로 억울한 속앓이를 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사소하게,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마땅히!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뭔가 부족한 사람 보듯 하는 시선, 한부모 가정의 아이는 상처가 있을 것이라는 드라마적인 가정(假定), 노인들은 욕망도 없을 것이라는 일방적인 해석 등등이 모두 우리의 확신 속에 저질러지는 폭력의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두 편에서 또 너무 이상한 결론으로 흐르긴 했습니다만=_=(애즈 유주얼..? 하하) 그러니까 제가 요번에 드리고자 했던 말씀은 우리가 타인에 대해 오해하는 것도, 어쩌면 그에 대한 폭력행사가 아닐까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저의 경우에) 저의 어떤 사람에 대한 오해는 그 사람에 대한 이해에 앞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음, 그러니까 우리는 불필요하게 너무 많은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달까요. 그거, 무게도 엄청날 텐데 말이죠. 그러니 우리 그런 무게 다 덜어내고 좀 가볍게 사는 건 어떨까요..? 하하.
- 편집부 임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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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은 정말 다각적 판단을 방해하는 최고의 요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ㅎ
저 또한 당해본적이 한두번이 아니라서...
에구. 레몬에이드님, 어떤 일로 당해보셨기에 ..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