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진행 중인 진태원 선생님의 강의 “스피노자의 『윤리학』읽기”의 1강 ‘스피노자의 생애와 사상’을 듣고 정리하는 느낌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외견상 평온한, 사실은 강도 높은, 스피노자의 생애

세 명의 스피노자, n명의 스피노자
우리에겐 세 명의 각기 다른 스피노자가 있습니다. 첫번째 스피노자는 어릴 때 읽은 명언집, 또는 문제집 쉬어가는 코너 등에서 만난 스피노자입니다. “내일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한 그 사람입니다. 두번째 스피노자는 철학사 책이나, 철학개론 수업에서 만난 스피노자입니다. 이 스피노자는 ‘합리론자’, ‘데카르트의 계승자’, ‘범신론자’ 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 스피노자는 들뢰즈에게 전해 듣거나, 알튀세르에게 전해 듣거나, 아니면 네그리로부터 전해들은 스피노자입니다. 이 스피노자는 “철학의 그리스도”(들뢰즈), “마르크스의 직접적인 선조”(알튀세르), “새로운 구성의 주체(다중)”를 발견한 철학자(네그리)로 나타납니다.

_ 세 명의 철학자, 그리고 세 명의 스피노자.
스피노자가 이렇게 세 가지 모습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면, 어떤 철학자의 ‘사상’이 단순히 그의 텍스트로만 구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온갖 층위에서 일어나는 받아들여짐, 즉 해석의 맥락이 그의 사유와 주장을 하나의 ‘사상’으로 태어나게 하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에겐 앞서 열거한 세 종류의 스피노자뿐만 아니라, n명 스피노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세 종류의 스피노자만 있다는 것이 이상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해석’의 맥락에서 생산되는 ‘스피노자’들 외에, 스피노자 자신이 이미 n명의 ‘스피노자’들 일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맞닥뜨린 삶의 각 국면마다 매번 하나이면서 동시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이 평면적이고, 단일한 것이 아닌 것처럼 스피노자 역시 매우 다질적인 조건들과 결합하면서 격렬한 삶을 살아갑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스피노자의 삶은 ‘스피노자’가 되기 위한 삶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스피노자의 생애는 스피노자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던 것이죠. 그가 살았던 삶이 n명의 스피노자가 태어나는 과정이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 n명의 스피노자와 접속해서, nⁿ명의 스피노자를 생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클림트 作 <사과나무 2>
_ 우리가 알고 있는 “내일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는, 저 사과나무의 사과열매만큼이나 많은 n개의 스피노자들 중 한 명일 뿐인지도 모릅니다.
_ 우리가 알고 있는 “내일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는, 저 사과나무의 사과열매만큼이나 많은 n개의 스피노자들 중 한 명일 뿐인지도 모릅니다.
유대인 공동체의 전도유망한 청년
스피노자의 조상은 잘 알려진 것처럼 포르투갈에서 네덜란드로 이민 온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는 집에서는 포르투갈식 이름인 Bento(벤투)로, 유대인 사회 안에서는 히브리식 이름인 Baruch(바루흐)로, 후일 철학자로서 명성을 얻게될 때에는 Benedictus(베네딕투스)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이 다양한 이름이 그가 살았던 복합적인 환경을 말해줍니다.
여하튼 가정 내부에서나, 암스테르담의 유대인 공동체 안에서나 스피노자는 장차 위대한 랍비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전도유망한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큰 형의 죽음으로 인해, 스피노자의 공식적인 교육과정은 끝이 나고 맙니다. 아버지를 도와 함께 무역상을 해나가던 큰형의 죽음은, 스피노자가 가업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도와 사업을 하던 차에 아버지마저 죽자, 스피노자는 사업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유대인 공동체로부터도 파문을 당하게 되는데, 스피노자의 파문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의 파문선언문이 그 어떤 파문선언보다도 악의와 저주로 가득 차 있었다는 점입니다. “깨어있을 때나 잠들어 있을 때나, 들에 있을 때나 산에 있을 때나… 항상 신의 저주를 받으리라”와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고 하니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알만합니다.

스피노자의 렌즈공방
_ 공식적인 그의 직업은 렌즈 장인(당대 최고의 천문학자였던 호이겐스가 사용하던 망원경의 렌즈도 스피노자가 깎은 것이었다고 합니다)이었고, 동시에 철학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파문 후에도 렌즈를 깎고 철학을 하며 자신의 삶을 아주 충실히 살았습니다.
_ 공식적인 그의 직업은 렌즈 장인(당대 최고의 천문학자였던 호이겐스가 사용하던 망원경의 렌즈도 스피노자가 깎은 것이었다고 합니다)이었고, 동시에 철학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파문 후에도 렌즈를 깎고 철학을 하며 자신의 삶을 아주 충실히 살았습니다.
당시에 ‘파문’ 당한다는 것은 산채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유대인 공동체 내부의 그 누구도 파문당한 사람에게 말을 걸어서도 안 되고, 말을 받아줘서도 안 되었습니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그 절망적 상황을 흔쾌하게 받아들입니다. 스피노자의 ‘파문’은 유대인 공동체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추방’이었지만, 스피노자의 입장에서는 ‘탈주’였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전통적인 관습의 굴레를 깨고 나온 것이죠. 이때가 스피노자의 나이 24살. 저 보다도 무려 4살이나 어릴 때였습니다. ^^;
파문 후 5년간 스피노자는 암스테르담을 떠나지 않습니다. 당시 암스테르담은 네덜란드의 활발한 무역, 식민지 개척에 힘입어 당대의 최신 사상과 기술이 모여드는 곳이었습니다. 데카르트도 스웨덴으로 떠나기 전에 암스테르담에서 10여 년간 활동합니다. 여러 가지 이질적인 요소들이 모이는 곳은, 그 이질성을 담아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만들어냅니다. 다시 말해, 온갖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공존할 수 있게 만드는 다양성의 그릇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유럽의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가톨릭과 신교, 유대교, 무신론까지, 철학사적으로는 최첨단에 있던 데카르트의 철학부터 중세로부터 이어져 오던 온갖 교부철학까지 온갖 것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스피노자는 이 다질적인 환경 속에서 자신의 사유를 무럭무럭 성장시킵니다. ‘별종’(네그리의 표현)은 바로 그러한 용광로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향후 전개될 스피노자의 철학에서도 나오겠지만, 완전히 이질적인 것들까지 공존하게끔 하고, 그것과 적극적인 변용을 할 수 있는 힘, 그게 바로 스피노자가 말하는 ‘역량’입니다. 어떤 존재의 역량은 그가 얼마나 많은 이질적인 것들과 ‘공통감각’을 형성하여 ‘집합적인 운동’을 산출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이죠. 따라서 네덜란드는 당대의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꽤 큰 역량을 지닌 ‘신체’였습니다.

암스테르담
_ n개의 스피노자를 가능케 한 곳이 바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_ n개의 스피노자를 가능케 한 곳이 바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피노자의 사유, 저작 활동들은 큰 역량을 지닌 신체, 17세기 ‘네덜란드’라는 환경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네덜란드의 왕당파와 칼뱅파 신학자들이 네덜란드를 왕의 나라, 칼뱅주의가 실현된 나라로 만들려고 했을 때 스피노자가 보여준 반발은 정확하게 그의 사유와 일치합니다. 다질적인 힘들이 균형 속에서 집합적인 운동을 구성해 나가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지배의 야망’이라는 정념에 이끌려 역량의 원천인 ‘다질성’을 제거하려고 노력합니다. 이에 대해 스피노자가 분노했던 이유는, 어떤 ‘대의’, ‘이념’ 때문이 아니라, 무엇보다 자신의 사유 환경을 지키고 싶다는, 자유롭게 글을 쓰고, 읽는 자신의 지적 운동을 지키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다음 주에는 스피노자가 쓴 저작들을 연대별로 따라가며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이 반응이 좀 좋으면 다른 철학자들의 삶도 이런 식으로 다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역시 반응이 좋을 것 같지 않군요. ^^;
- 웹기획팀 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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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옷 드뎌 정군님이 삽을 뜨셨...(;;)
스피노자라
사실 저같이 철학에 어려움을 겪는 중생에게는
이런 글들이 재미납니다요
연작 부탁드려요 ㅎㅎ
아~ 레몬에이드님 반갑습니다!!
재미있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연재는... 뭐랄까... 최선을... 다해 봐야겠죠? -_-;;;
다음 주에 쓰시겠다는 스피노자의 저작들 대한 글도, 다른 철학자들의 삶도 이런 식으로 다뤄 볼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말도!! 완전 기대됩니다. 부디 반응이 좋아야 할텐데..+_+
팔방기인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반응이 좋아서(?!) 스피노자 저작들에 대한 글도 곧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기대해 주세요!ㅎ
그냥 블로그 뉴스를 따라 따라 들어왔습니다만,, 흥미롭습니다.
저는 이유없이 스피노자를 맘에 들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마 고등학교 때쯤 윤리책에서 바로 저 초상화와 함께 봤던게 처음이었죠.
솔직히 철학이라하면 어렵게만 느겨지지만, 블로그란 공간에서 과거의 철학자를 만나니 참으로 반갑네요. 가능하시다면 나중에 헤겔도 한번 다뤄주세요. 대학 교양수업 '인간과 가치'에서 헤겔을 참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있죠.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부디 연재를 볼 수 있기를..
초록의 자아님의 스피노자가 n명의 스피노자와 접속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또 nⁿ명의 스피노자를 생산할 수 있으시길. 연재, 기대해 주시구요~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스피노자의 파문은 바로 소개된 범신론과 관계가 있는데 지구의 모든 것에 내재된 신의 사랑을 설파하는 범신론과 유대교의 초월적인 유일신론 사이에는 갈등이 있습니다. 당시 기도교의 프로테스탄트들의 교리(칼뱅학파)에 대한 관용적인 스피노자의 태도와 더불어 성서에 대한 오류있음을 지적하고 과학적인 논리(홍해의 갈라짐)로 설명하려는 이 철학자가 유대교에게는 눈에 가시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결국 파문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박수인님, 안녕하세요.
스피노자의 파문과 관련해서는 여러 설들이 있지요. 자세한 말씀 감사합니다. ^^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할께요~
준열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