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정말 출판사의 유일한 상품인가?


출판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고 생각한다. 1)저자 : 컨텐츠를 생산하는 사람들 2)출판사 : 생산된 컨텐츠를 상품으로 가공하는 사람들 3)독자 : 상품으로 가공된 컨텐츠를 수용하는 사람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 이견 없이 동의할 만한 내용일 것이다. 하지만 조금 민감한 사람들, 특히나 출판 마케팅에 관계된 사람들이라면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르겠다. 무얼까? 위의 구성 요소들에는 서점이 빠져 있다. 책이라는 상품이 독자와 만나기 위한 최종 공간, 유통 채널이 빠져 있는 것이다.  이제 문제점을 발견했으니 출판의 구성 요소를 네 가지로 고쳐야 할까? 유통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데, 출판사가 운영되기 위한 수익이 직접적으로 발생하는 곳일 뿐더러 독자가 책을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인 서점을 빼고 어떻게 출판 산업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애석하게도, 앞서 말한 세 가지면 충분하다. 왜냐면 세 가지 구성 요소를 말하면서 ‘책’이라는 단어를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출판보다는 미래의 출판에 시선을 두고 있다는 뜻이다.  많은 질문들이 가능할 텐데, 이제부터 ‘컨텐츠’와 ‘상품’이라는 두 단어를 중심으로 몇 가지를 자문자답해 보려고 한다.

출판이란 어떤 일인가?

출판이란 무엇인가? 글쎄, 이런 질문이 유행한 적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출판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품어 본 고민이라 생각한다. 많은 답들이 있을 것이다. 지식과 지혜를 널리 알리는 일,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한 지식을 제공하는 일, 세상을 변화시킬 지식을 전파하는 일, 개인의 고민과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질문에 답하는 일. 여기에 정답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책에 담기는 무수한 내용만큼 다양한 수천 수만 가지의 ‘출판 존재론’들이 있을 것이다. 이 질문은 근본적인 질문이다. 하나의 절대적인 목적지가 존재하진 않지만, 누구나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해선 끊임없이 던져야 하는 질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답할 때 꼭 하나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출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책을 만드는 일’이라고 답하고 마는 것이다. 출판이 책을 만드는 일을 하긴 하지만, 과연 출판 = 책 만드는 일로 등치시킬 수 있는 것일까? 부족하다. 출판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만으로는 출판을 모두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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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주 作 <우주라는 책>

출판이란 어떤 일인가? 이제 이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출판에 대한 목적론이나 존재론적인 의지보다는 실제로 출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중심에 둔 ‘행위의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존하는 유일한 답, 출판이란 어쨌든 책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 말고 출판이 하는 일을 설명하고, 출판이 해야 할 일을 설명해 주는 답을 만들어야 한다. 책이 출판의 전부가 아니지는 않을까 의심해야 한다. 대체 출판이란 어떤 일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일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한가로운 선문답이 아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답으로는 새로운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 는 것이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현실의 고통스러운 고민이 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젊은층의 독서율 저하, 갈수록 열악해지는 출판의 다양성, 디지털 미디어의 눈부신 발전 따위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출판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몸으로 먼저 느끼고 있을 것이다. ‘책’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니면 그런 시절은 이미 지났다는 사실을.

책이 출판의 유일한 상품인가?

컨텐츠를 중심에 두고 출판을 바라보면 많은 것들이 달리 보인다. 우선 책이 예전의 그 책이 아니다. 출판사를 대표하고 출판사의 모든 것을 온 몸으로 웅변해 주는 듯 했던, 사랑스러운 그 책이 이제는 컨텐츠를 둘러싸고 있는 한낱 포장지로 보일 뿐이다. 책 만드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고 정말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정열을 불태웠던 편집자의 장인 정신보다는, 흐르는 컨텐츠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핵심을 파악해서 다양한 형태(상품)로 가공할 수 있는 능력이 편집자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일게 된다. 책이 서점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팔릴 수 있도록 쉴새없이 현장을 누비며 한 권이라도 더 많은 책을 팔기 위해 애썼던 출판 마케터가 지금까지 놓치고 있던 일은 없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결국은, 책이 출판사가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상품인지 의심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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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Aren't Dead. (Newsweek)
_ "책은 죽지 않는다. 다만 디지털로 갈 뿐이다."

책은 물론, 현재의 상황에서 출판사가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상품이다. 또한 고객들이 가장 매력을 느끼고 있으며 그로 인해 출판사 수익의 대부분을 안겨주는 상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다시 얘기하지만 책이 출판사의 미래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몸으로 느끼고 있다. 자신의 고유 매체에 대한 고집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몰락해 버린 음반 산업의 예를 꼭 들어야 할까. 출판을, 컨텐츠를 다루는 일로 정의하고 컨텐츠에 기반해서 다양한 상품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그래서 출판이 어떤 일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 것이다. 출판이 하는(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순간 웹을 바라보는 방식도 크게 변하게 된다. 좁은 의미의 마케팅, 즉 프로모션이나 홍보를 위한 도구로 웹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의 근본적인 부분, 이를테면 기업의 미션을 결정하는 일이나 상품을 기획하는 일에 웹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끼어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웹이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면 서점의 역할, 유통의 역할은 당연히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혹시 미래의 출판은 컨텐츠를 가공해서 웹에서 유통될 수 있는 상품을 만드는 일이 주력사업이 되고, 웹은 서점을 능가하는 중심시장이 되는 것은 아닐까?

웹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웹을 무언가의 역할을 보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출판의 경우에는 아마도 서점의 역할을 보완하기 위한 도구로 웹을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인 것 같다. 판매에는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홍보 효과는 어떤가? 하는 질문들이 자주 나오는 것이 바로 웹에 대한 인식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웹은 책이 시장과 만나는 자리에 놓인 여러 마케팅 도구 중의 하나가, 절대, 아니다. 지금의 출판 환경을 고려하고 말하더라도, 웹은 적어도 책에 준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중요한 미디어라고 말하고 싶다. 출판이란 컨텐츠를 다루는 일, 그 컨텐츠(지식)를 제공함(나눔)으로써 이익을 창출하는 산업이란 정의에 동의한다면 말이다. 웹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거의 없는 뉴미디어이다.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지식에 접근할 수 있고 쉽게 공유할 수 있으며 일방적인 수용이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까지 가능한 것이 바로 웹이다. 지식을 나누기에 이보다 더 좋은 매체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오히려 책보다는 웹이 지식의 나눔에 더 적합한 미디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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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이라는 우주

여전히 책을 좋아하는 한 개인으로서, 웹의 폭발적인 성장과 맞물려 책의 죽음이 논의되는 시기에 위안으로 삼는 생각이 있다. 웹이 새로운 미디어이고 또한 혁신적인 상품이지만, 책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직은 책에 담겼을 때 가장 큰 만족을 줄 수 있는 컨텐츠들이 많이 있다. 컨텐츠의 밀도가 높거나 글의 호흡이 길거나 감정의 흐름을 실어서 읽어야 하는 글들은 여전히 책으로 접하는 것이 가장 좋다. 모니터로 읽는 것에 비해서 훨씬 편안하고 즐거우며 심지어 효율도 높다. 책은 여전히 매력적인 매체이다. 하지만 그 사실에 안주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웹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 그 일들은 아마 책과 나란히 갈 것이다. 출판에서 중요한 것은 책이냐 웹이냐가 아니라 컨텐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면서도 출판이라는 일의 미래를 말할 때, 사실은 즐겁다. 정말 많은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출판은, 무엇을 할 것인가?

- 마케팅부 이경훈

2009/06/05 11:16 2009/06/05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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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9fifty Snapback

    Tracked from 9fifty Snapback 2014/09/30 10:28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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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헌책방IC 2009/06/05 12:35

    출판업에 계신 분들이 직업적 소명의식 내지는 사명감을 갖길 바랍니다.
    말씀하신 대로 출판을 한마디로 정의하기에는 매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사전적 정의야 있겠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느끼는 효용 정도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정의가 있을테니까요. 건조하게나마 출판을 정의하면 글을 엮어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만큼 사회에 공헌한다는 사명감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먹고살자고 무분별하게 책을 생산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비판하고자 하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좋은 책들이 수많은 책(이런 저런 자료를 짜깁기한 제본서 등)에 묻혀 사장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본 블로그는 아마도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명감을 갖고 세상에 책을 전파하는 그린비출판사이길 바랍니다.

    • 그린비 2009/06/05 13:57

      헌책방IC님, 안녕하세요.
      출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신 것 같네요.
      저희는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출판사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있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2. ego2sm 2009/06/05 13:27

    책은 1차 컨텐츠 생산물, 2차, 3차(강연, 방송, 다큐 등등)로 파생되는 거잖아요.
    (불론 그 반대의 경우도 왕왕 생기고 있지만^^)
    그런데 그 첫번째라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할 것 같아요.
    웹은 이미 책보다 많은 지식과 정보를 담고 있을지는 몰라도
    모니터 상으로 읽는 텍스트와 종이를 프린트해서 읽고 느끼는 정도는
    매체의 성격만큼 큰 흡수력의 차이가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위에 분 말씀대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만들어낸다는 사명감
    없이는 출판계에 오래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 그린비 2009/06/05 14:07

      ego2sm님, 안녕하세요.
      저는 책이 1차 컨텐츠 생산물이다, 첫번째다, 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습니다. 물론, 위의 글에서도 나와있고 에고이즘님께서도 말씀해 주셨듯 '책'만의 매력은 인정합니다만, 출판의 의미와 출판의 미래를 생각할 때는 오히려 책이라는 물성에 담긴 컨텐츠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

  3. SEEnPD 2009/06/15 03:16

    컨텐츠를 나누는 방법의 차이인 거 같네요 ^^
    웹에서 다루냐 그것을 출판을 통해 책으로 엮느냐의 차이겠지만,
    방법의 차이겠지만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컨텐츠의 질' 이겠죠.

    뭐, 사실 글 읽은 것을 좋아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뜨거운 노트북에 손가락을 구르며 있는 거 보다는
    아직까지는 종이냄새 그윽 책 읽는게 더 좋은거 같아요.

    ^_^

    좋은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 그린비 2009/06/15 09:38

      SEEnPD님, 안녕하세요.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컨텐츠로 계속 만나뵙겠습니다. ^^*

  4. 이안 2009/06/15 12:50

    그린비 블로그엔 처음 와보네요.
    저도 책을 쓰고, 만드는 사람인데 다시 한 번 책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디지털시대가 와도 책은 살아남을 거예요. 중이책의 그 소중한 가치를 무시할 수 없거든요.
    조정의 기간은 필요 하겠지만요.

    저는 그래요.
    책을 만들면서 제 일생에 단 한권이라도 '두근 두근 심장소리가 담긴 그런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요.
    아직은 책을 만들고 나면 아쉬움만 많이 남지만요, 언젠가 그런 심장소리가 나는 그런 책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린비의 책들도 그런 책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늘 좋은 책 만드시는 거 잘 알지만요.

    그린비가 좋은 책을 만들면서 튼튼하게 자리를 다져 주셔야 더 좋은 우리 책들이 많이 나올 수 있겠지요?
    그린비 화이팅입니다.

    • 그린비 2009/06/15 13:45

      이안님, 안녕하세요.
      '두근 두근 심장소리가 담긴 책'이라니, 멋집니다.
      꼭 그런 책을 만드시길 바랍니다. ^^*
      저희도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