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니츠의 삶과 그의 철학 - '예정'을 넘어선 '조화'


라이프니츠?
'예정조화설'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이야기는 17세기 독일에 살았던, 아니 '유럽'에 살았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라이프니츠의 이야기입니다. 라이프니츠는 철학자이면서, 수학자였고, 동시에 외교관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삶이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면, 하노버 공국(라이프니츠의 직장)의 공식 외교문서를 품에 넣고, 프랑스 국경을 넘는 마차 안에서 대수학의 온갖 원리들을 고민하다가, 문득 존재(1)와 무(0)에 관한 영감이 떠올라 '모나드론'에 관한 논고를 즉석에서 작성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그는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책상머리에 앉아서 사유의 사유를 거듭하는 일반적인 학자의 이미지하고는 거리가 먼 아주 액티브한 사람이었다는 것이죠. 외교관이라는 직업 덕에 마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만큼 많았던 그는 길고 정치한 글을 몇 편 남기질 않았습니다. 생전에 출간한 책도 딱 한권(『변신론』theodicy, 辯神論) 뿐이었죠. 간혹 『모나드론』과 같이 꽤(?) 긴 저작이 있긴 하지만, 나머지 글들은 대개 편지, 메모의 형태로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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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라이프니츠는 1704년 또는 1705년 데카르트주의 자연 철학자 드 볼더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물체를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것으로 환원한다. 왜냐하면 나는 물체질량이 실체가 아니라 현상, 유일하게 단일성과 절대 실재성을 지닌 단순 실체에서 결과한 현상이라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김성환, 『17세기 자연 철학』, 275쪽)

이건 꽤 중요한 사실인데, 이 당시(17세기 또는 그 이전) 철학자들에게 '편지'는 다른 일하고 남는 시간에 쓰는 글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인맥관리'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었죠. 오히려 그것은 아주 중요한 지적활동 중에 하나였습니다. 요즘 시대에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과 같은 활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례로 스피노자의 경우 『윤리학』을 쓰면서 친구들과 서신을 통해 내용을 공유하고, 어려워하는 부분을 보강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17세기 철학자들의 글을 모아둔 전집을 보면 거의 반절 이상이 편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라이프니츠의 실체 - 모나드
라이프니츠는 그의 직업 때문에 그런 경향이 더 도드라지게 나타납니다. 일단 긴 저작을 체계적으로 쓸 만한 시간이 그에게 없었죠. 그래서 압축적이고, 절제된 형태의 짧은 글이 많은 편입니다. 데카르트로 치면 『성찰』, 스피노자로 치면 『윤리학』에 해당하는 라이프니츠의 주요 저작인 『모나드론』에 그런 특징이 아주 잘 살아있습니다. 『모나드론』은 '단자론'이라고도 불리는 저작인데, 단자(모나드)가 각각의 개별자 안에 있는 실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단자(모나드)는 서로 교류하거나 다른 것에 의해 영향 받고, 주는 관계를 맺지 않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닫혀 있습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이게 만약에 열려있는 구조라면, 실체의 제일조건인 단일한 자기동일성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실체'라고 했는데, 이게 환경에 따라 계속 변화한다면 '실체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웠을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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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드
_ 창이 없는 모나드 안에 질서가 없다면 세상은 이미 파열했을 거라는 글을 읽었다. 그 단자 안의 질서에 보이지 않는 신의 질서, 하모니(조화)가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 (출처 : 신사빈)

그렇다면 실체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겠는데, 변화무쌍한 세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습니다. '예정조화설'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옵니다. 변화는 이미 단자 안에 있던 '잠재성'이 펼쳐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를테면 나무는 보다 작은 나무 안에 접혀있고, 작은 나무는 싹 안에 접혀있고, 싹은 씨앗 안에 접혀있고, 씨앗은 씨앗을 만든 큰 나무 안에 접혀있고… 이런 식의 잠재성의 계열이 무한하게 접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라이프니츠가 수학사에서 '미분'개념과 관련해서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가 여기서 드러나죠.) 더불어 나무A와 나무B 사이의 관계도 이런 식으로 이미 '예정'된 채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이미 그 안에 큰 '낙천성'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선한 신의 역량에 따라 세계가 이미 '조화' 속에 있는 이상 걱정할 일이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죠.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 라이프니츠의 사고방식에서 가장 배울 만 한 점은 그러한 낙천성 이상의 낙천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낙천성 이상의 낙천성
가령 우리와 완전히 다른 어떤 것, 혐오감마저 주는 어떤 것을 대할 때를 생각해 보면 쉬울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대할 때 우리는 대개 회피하는 입장을 취합니다. 가령 정치가가 역겨워서 정치일반에 관심을 끄는 경우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라이프니츠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런 것들도 사실상 어떤 '예정' 속에 있는 것이고 '조화'를 예비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 차원'을 발견하고, 그것이 현실화 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 됩니다. '긍정성'은 이미 예비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세상에 귀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과 '조화'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것이 될까, 안 될까를 재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닌 것이죠. 그런 점에서 라이프니츠는 서구의 제일철학(형이상학)과 중국의 윤리적 생활방식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완전히 이질적인 것이 서로 조화될 수 있고, 서로 시너지를 내는 관계(이게 바로 '조화'의 본뜻이죠)를 맺을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 두 진영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교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유의 철저함과 이론적 훈련에 있어서는 우리가 그들보다 월등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당연하게 우리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비물질적인 사물들에 관한 지식 및 논리학과 형이상학 외에도 질료적인 것의 이해를 통하여 추상화시킨 형식의 파악, 즉 수학적인 것에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변적 학문이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한다면, 그들의 실천철학은 확실히 우리보다 월등하다. 다시 말해 그들은 인간의 삶과 일상적 습속에 적용되는 윤리와 정치의 가르침에서 우리를 능가한다."
(『라이프니츠가 만난 중국』37~38쪽)

조금 길게 인용한 이 문장에서 그의 그런 생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가령 아주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가 존재하는 이유, 그의 잠재성을 먼저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낙천적인 사람이 즐거운 세계를 만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라이프니츠가 그린 세계가 어떠하던 간에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즐거운 세계'를 만드는 모티브를 그의 철학에서 읽어내면 되는 것이고, 그 점에 있어서 아주 좋은 소스가 될 수 있는 것이 위에 말씀드린 저런 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정조화설'이라는 어휘가 품고 있는 '유사-신학적'인 뉘앙스와는 많이 다른 독해방식입니다.

요즘 들어 많이 느끼는 것이지만, 무턱대고 싫어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것이든, 일단 잘 보면 아주 작게나마 긍정적인 것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고, 그것이 나쁜 것일 때조차 다른 배치 속에서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죠. 처음부터 언제나 나쁜 것, 처음부터 언제나 좋은 것을 넘어서 어떤 식으로든 지금 우리에게 좋은 것들을 찾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웹기획팀 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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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6 11:38 2009/07/0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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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미적분법을 창시한 독일에 수학자 라이프니츠

    Tracked from 두산동아 백점맞는수학 블로그는 2010/02/02 02:20  삭제

    세상에 위대한 인물들은 참 다양한 능력들을 가지고 있는것 같아요. 오늘 소개할 수학자는 라이프니츠.이전에 소개했던 수학자들도 다양한 분야에 몸담고 있었지만, 수학자 라이프니츠를 보면 이사람의 소개는 참 많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적분의 창시자라고 해서 뉴턴과 비슷한 시기에 별개의 연구로 진행했었고, 뉴턴과는 누가 미적분의 창시자인지 다투기까지 했었다네요. 라이프니츠는 어려서부터 조숙한 천채로서 스스로 방대한 서적을 익히고, 14살에는 라이프치히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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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트걸 2010/03/02 18:58

    아트앤스터디에서 <근대성 논쟁의 뿌리 :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라는 강의가 7주에 걸쳐 진행됩니다. 관심 있으시면 한 번 둘러 보세요^^
    http://www.artnstudy.com/inmoonsoop/Lecture/default1003.asp?lessonidx=off_yjKim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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